방학이 되어 아이들에게 밥을 목이려니 반찬거리 궁리를 하게 된다. 유튜브를 뒤지며 ‘쉽고 빠르고 맛있게’ 반찬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본다. 업그제는 오이지 만드는 법을 봤는데, 가끔이지만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그 오이지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고 그리워 하는 반찬은 모두 엄마가 잘 해주던 것들이다. 감자간장졸임, 감자볶음, 삶은 두부, 된장찌개, 고구마줄기 무침 등등
내가 하는 음식이라는 게, 내가 기억하는 게 엄마가 해준 맛이라는 걸 생각하면, 내가 해내는 것들은 완벽하지 못한 재현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흉내내도 그때 그맛을 재현해 낼 수가 없다. 단칸방에 오래 살아서, 나는 아침에 엄마가 도마를 탁탁 거리며 반찬 준비하는 소리에 깨고는 했다. 그 타닥타닥타닥 하는 소리는 향기를 몰고 와서, 향기에서 소리가 나는지, 소리에서 향기가 나는 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둘은 내 코를 흔들어 잠을 깨웠다. 우리 오감 중 민감도를 생각하면, 가장 훌륭하고 강력한 알람은 향기가 되어야 하겠다.
내가 엄마가 해준 음식의 맛을 재현하려고 애쓸 때, 그것은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 지 모를 그 맛, 이어지고, 탈락한 맛. 그러니, 엄마가 해준 음식의 맛을 기억하고 재현하려는 내 노력은 내 가계도를 식탁 위에 다시 그리는 일이다. 마치 지구를 거꾸로 7바퀴 돌아 과거로 향하는 슈퍼맨처럼 나는 반찬을 통해서 영겁의 시간을 향해 헤엄친다. 완벽하지 못한 재현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는 현장이 된다.
애초 우리는 유전을 떠올리면, 육체라는 물리적인 것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쉽다. 니 코는 엄마를 닮았구나. 웃는 게 아빠랑 똑같네 수준. 하지만, 정말 중요한 유전인자는 다른 것들이다. 마치 아빠가 단점을 고대로 닮은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자질들을 물려받고, 학습하고 익숙해졌을 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출생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정 안에서의 교육, 부모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무엇이 천성이고, 무엇이 학습된 것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맛으로나마 재현하면서,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를 만난다. 마치 30년전 엄마의 음식맛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머리 속에 도마 소리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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