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크게 힘쓰고 있는 게 저녁 식사 준비다. 딸과 아들은 나를 닮아서(?) 당췌 열심히 먹지 않는다. 집에 반찬은 없고, 반찬 가게에서 사올 수 있는 레파토리는 정해져 있어서 아이들도 이제 손을 잘 대지 않는다. 방학을 맞이해서 나는 저녁 만큼은 새로운 반찬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살림을 하게 되면 우선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 지 다 파악해야 한다. 나는 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 며칠 냉장고에 신경을 쓰다 보니 냉장고에 있는 채소며 식재료들은 파악이 다 되었다. 메뉴를 구성할 때는, 오늘은 애호박 반 개로 된장끓이고, 내일은 그 애호박으로 전을 부치는 식으로 연계가 되어야 한다. 유통기한을 기억하고, 거기에 맞춰서 음식들을 탁탁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장을 보면서, 내일 사야 할 것들도 생각해 둔다.
어제 저녁에 했던 것은 기름두른 후라이펜에 저며썬 애호박을 깔고, 모짜렐라 치즈 200그램, 파, 소금 약간을 넣은 계란물을 붓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약한 불로 익힌 메뉴다. 애호박 덕분에 달근했고 치즈 덕분에 담백했다. 오랜만에 저녁식사 자리에서 딸에게 “맛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제 잘 먹고 잤지만, 오늘 딸은 늦게 일어났다. 맘 편히 기다리다가 등원을 위한 마지막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티비를 켜고, 빗에 약간 물을 묻혀서 머리를 빗어준다음, 딸은 메뉴를 선택한다. 오늘은 양갈래로 땋아줘. 처음에 머리를 묶지 않고 바로 땋아줘 그게 예뻐. 육아휴직 때는 특히 열심히 머리를 했지만, 그래도 엄마들이 해주는 것에 비하면 볼품이 없었다. 머리를 묶는 것은 좀 나았는데, 땋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우선 땋으려면 머리를 잘 빗은 다음에, 세 갈래를 나눠야 하는 데, 늘 이것부터 실패했다. 양쪽으로 땋으면 높이가 다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 머리카락 뿌리부분을 고무줄로 묶어두고 하면 훨씬 쉬운데, 오늘은 어려운 주문이다. 머리카락은 자꾸 내 손가락을 빠져 나가고, 내 손은 어찌할 줄 모르고 피곤함만 느낀다. 그래도 오른쪽은 별로 어렵지 않게 성공. (휴직했을 때의 그 수고가 다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왼쪽 머리가 잘 안 땋아진다. 어렵사리 땋고 나니 오른쪽과 높이가 맞지 않다. 그렇게 몇 번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 성공. 유치원 앞에서 딸을 부른다. 딸, 머리 잘 땋았으니 사진으로 하나 찍어두자.
오늘 저녁은 고기다. 어제 미리 사둔 고기를 꺼내어 소금을 바르고, 후추를 발라서 손질해 둔다. 전자렌지에 넣어도 되는 용기를 꺼내어 대파를 깔고 양파를 깔고 고기를 얹는다. 다진 마늘도 얹어서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15분만에 수육 비스무리 한 게 나왔다. 진짜 수육이었으면 아이들이 더 좋아했겠지만, 그래도 잘 먹는다. 늘 커다란 김치반찬통을 꺼내어 먹고는 했는데, 아이들이 영 김치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는 작은 접시에 김치를 옮겨담고, 약간은 씻어서 둔다. 내가 워낙 김치를 좋아해서 내 아이들도 당연히 좋아할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먹여볼 생각. 그렇게 또 한 끼를 끝냈다.
저녁을 잘 먹이고 나면, 아침에는 그냥 빵 정도도 괜찮지 않아..라고 혼자 생각하기는 하는데…
내일 아침에는 뭘 먹이나.
집안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힘든 이유가 쌓아 간다기 보다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을 살 찌우는 일이니 오랜 시간을 두고 보자면 분명 양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게 짧은 순간에는 확인이 안되기는 한다. 먼지는 늘 들어오고 쌓이고, 이걸 치우는 것은 덜어내는 일일 뿐. 아, 그러니 더 효율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 살림 끝.
'일상사 > 아빠로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김치 주는 엄마를 안아주는 게 뭐가 어렵나 (4) | 2022.01.10 |
---|---|
오이지맛은 유전되었다 (0) | 2021.12.29 |
조용한 우리집의 크리스마스 이브 (0) | 202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