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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이 남긴 숙제

 

매주 수요일 #글요일 모임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작년 4월부터 거의 매주 만났다. 책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에밀도 함께 읽었다. 시간을 내어 3번을 만났고 오늘은 마지막 모임. 빠르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 줄 한 줄 버거운 책도 아니다. 다 읽고 나니, 이렇게 설렁설렁 읽어대고 고개 끄덕이며 넘어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대화를 나누었거나, 생각했던 내용을 간단히 기록해 남긴다.

 

루소는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는 직접 키우지 못했을까. 나는 에밀을 다시 훑어보면서 루소가 말하는 인간의 참된 모습에 대해 그려 보게 되었다. 에밀이 정말 루소가 말한 것과 같은 인물이라면 분명 매력넘치는 사람이 되리라. 개인은 존중하되 사람들의 쑥덕거림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책에서는 ‘세론’이라 언급하는 데, 이는 바로 자연에 대치되는 ‘사회’의 속성이다. 위에 인용한대로 ‘군중’은 경멸의 대상이다. 군중은 제대로된 의견을 조직하는 것이 어렵다. 군중은 대개 이익을 위해 뭉치거나, 단순화된 프로퍼간다를 좇기가 쉽다. 의견을 들으려면 개인에게 접근하는 것이 좋고, 관찰에 의한 것이 좋다. 군중 속에 있는 인간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군중심리에 매몰되어 군중의 일원이 되고 싶어하지 군중 안에서 소외되기를 원치 않는다. 에밀이 이러한 군중으로부터 초탈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욕망을 실현하는데 있다. 자기가 입고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상태. 건강하여 또렷이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정신을 제어할 수 있을때에야 가능하다.

에밀을 통해서 루소는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금 드러낸다. 사회계약설을 읽으면 더 잘 알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욕망이나 자신의 나약함에 의해 사회를 만들었다면 사회는 분명 부패하기 쉽다. 나의 결핍을 채우고자 한다면 남의 결핍을 우선순위에 두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루소가 감각을 인신의 최전선에 있다고 했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정신이 먼저이거나 감각이 먼저인 것이 아니라, 그 둘은 거의 동시에 작용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냄새를 맡으려면, ‘냄새를 맡고 있는 기능’은 우리 정신의 한 부분을 사용하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깨이었는 상태’는 정신 작용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추상’의 세계는 루소가 말한대로 몸이 한참 성장하고나 일어나는 게 아닐까. 언어라는 도구가 있어야, 셈이라는 도구가 있어야 사고 또한 더 나아가는 듯 하다. ‘사고’에 대해서는 더 공부해볼 필요가 있으면 분명 흥미롭다.

종교를 사고할 수 없는 이는 어쩌면 모두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파했기 때문에 루소의 ‘에밀’은 금서가 된 것일까? 천지분간 못하는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죽게 된다면 그 아이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자. 하지만, 성인이 되었으나 예수에 의탁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겠지.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 ‘신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이는 갓 태어난 아이의 상태와 같지 않을까? 그러니 그는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 게 아닐까? 멀쩡한 몸과 정신을 가지고 왜 신을 받들지 않았냐며 지옥으로 보낸다면, 신은 너무 째째한 게 아닌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피조물인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원해주는 게 신의 몫이 아닐까. 인간의 인지는 신이 만들어둔 만큼만 가능하다. 한 인간이 그 이성과 마음으로 신을 발견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왜 인간의 잘못인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육아서나 교육서로서가 아니라, 성인이 된 우리의 성장을 되돌아 보는 수단으로 쓰면 어떻겠나 하고 모임을 시작했다. 루소가 에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 중에 얻었으면 하는 자질들도 있다. 그러한 여정을 오로지 관찰과 사유로만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있어서 루소는 대단하다. 그가 심리학의 시대를 살았더라면 더 많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에밀을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에밀에 대해서는 더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