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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들은 피구 경기를 위해 작전을 짜고 동의서를 준비한다

아들의 작전


자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데, 아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그리고 있다. 뭘 하나 보니 피구 작전을 짜고 있다. 코로나 시대이지만, 학교에 가고는 있고, 가끔 체육 수업도 한다. 그리고 수업 중에 피구를 한 적이 여러번 있었고, 아들은 그때마다 어떻게 해서 지게 되었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 편을 나누기는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불리한 편이었다는 게 아들의 이야기.

아마도 이제 시합을 하나 본데, 아들은 나름의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6살 때부터 태권도를 다니며 형들과 피구를 해서 그런지, 아들은 피구를 좋아한다. 아내는 아들에게 ‘엄마는 공이 무서워서 피구 싫어했어. 혹시 친구 중에 피구를 잘 못하는 애가 있으면 엄마도 어릴 때 저랬구나 생각하면서 너그럽게 생각해.’ 라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 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기고 싶은 생각만 드나보다.

메모해둔 것을 보면, 같은 편인 친구들에게 피구를 잘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 이런 요령대로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은 작전을 짜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친구들이 사인할 동의서를 한글 프로그램을 열어서 만들기 시작했다. 번호/ 이름/ 사인/ 동의 여부를 쓰는 칸을 만들기 위해서 나한테 일단 표를 그려 달라고 했다. 샤워하고 나와보니 그 표에 번호/ 이름/ 사인/ 동의 여부를 써두고, 예도 써뒀다. 아마도 자기 작전을 알려주고, 그 작전을 따를 지 아닐 지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려는 것 같다.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들, 친구들이 네 작전이 싫다고 하면 어쩔꺼야?’ .. 물론 아들에게 그런 걱정을 말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친구들에게 신나서 작전을 설명할 기회는 갖게 될테니까. 어떤 친구들은 그러겠다고 동의를 할 지도 모르고, 어떤 친구들을 동의를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고 나면 아들도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겠지.

나는 어려서 운동을 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못하는 편도 아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끼어서 할 수는 있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 공부를 잘 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발표를 잘 하거나, (좀 크고 나면) 키나 몸집이 크거나 잘 생기거나 하면 세상 살이가 편했던 것 같다. 여러가지 혜택을 갖고 있으면 세상 살기가 편하다. 그때는 그런 걸 알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자신만 생각할 나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때였다. 내가 가진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가지지 못한 것만 얻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40년 넘게 살고서야 와 익숙해졌다. 사람이 아둔해서 참 오래 걸렸다. 지금도 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늘 미세조정 중이다. 나는 4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내 아이에게는 좀 빨리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방법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라는 것은 내 좁은 경험에서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고, 그 지혜가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말이나 글로 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들이 짠 작전에 대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꽤 많은 친구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아들의 생각을 들어줬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