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늦는 밤.
아내는 술을 마시지 않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집에 늦게 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나는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즐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주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시느라 집에 늦게 들어온 적은 최근 3년 간은 없다. 오늘은 아내가 같은 부서 사람들이랑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일찍 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더 일찍 왔었어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좀 늦어 버렸다. 머리를 빨리 잘라야 돌봄 마치고 나오는 딸을 만날 수 있을텐데 마음일 닳았다. 머리를 자르자 마자 차를 슝 몰고 지하주차장에 얼른 차를 댔다. 가방도 들지 않고 딸의 학교로 뛰어 갔다. 2시 30분이면 마친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10분 정도 지나니 종소리가 들린다. 40분에 마치고, 아들이 딸을 데리고 나온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지만, 한참은 아니다. 딸은 나를 발견하고 너무 세게 뛰어와 나에게 안겼다. 분명 조금 아팠을 것 같은데, 딸은 좋아라 한다. 딸과 아들의 가방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아들 가방이 무겁다. 숙제를 하려고 가지고 갔다는데, 가방이 너무 무겁다. 가방을 집에 갖다두고 잠시 앉아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다.
딸은 미술학원으로 가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아들 예방접종이 있는 날이다. 아들 영어학원 가방이랑 아들 자전거를 챙겨가서 아들에게 안겨준다. 주사 맞기 겁난다는 데, 결국 주사 맞을 때는 씩씩하게 잘 맞았다. 진료를 하니, 콧물이 있어서 비염약을 처방받아 온다. 이제 아들은 알약을 먹을 수 있다. 로컬마트로 가서 과자를 고르고, 양배추를 사고, 햄을 사고, 반찬가게로 옮겨서 반찬 몇 가지를 산다. 아들은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영어학원으로 간다.
집에 와서 짐을 내리고, 다시 딸 학원으로 간다.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딸을 안아 올린다. 이제 더 이상 안아주면 안되는 걸까. 무겁기도 하고, 이제는 너무 커다란 우리 딸. 나는 자꾸 이제는 못 안아준다고 말하지만, 딸은 백살까지도 앉아달라고 한다. "매일 오늘 같으면 좋겠다." 딸은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요즘 가끔,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어. 란다. 착하고 사려깊은 딸이라 떼를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쁘고, 그래서 좀 안쓰럽기도 하다. 아무튼 누구보다 잘 적응 중인 우리 딸. 딸을 업고 안고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슬그머니 내려준다.
딸은 혼자 샤워를 하고, 나는 냉동되어 있던 돼지국밥을 데운다. 엄마가 없으니, 원지언니 방송을 보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아주 후루룩 밥을 먹고 과자도 먹으며 영상을 본다. 아들은 학원을 마치고 와서 국밥을 먹자마자 누워서 책을 본다. 주사 맞은 데가 아프다면서도 업드려서 책을 읽는다. 내 잔소리에 씻고, 내 잔소리에 머리를 말린다.
아내가 집에 온 시간 8시 20분. 딸은 세 번 정도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었다. 언제 올지는 나도 궁금했지만, 문자는 보내지 않았다. 왠지 일찍 들어오라고 채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집 생각하지 않고 좀 편히 있다고 오면 해서. 나도 아내가 언제 올지 궁금했지만, 잘 참았다. 아내가 오니, 마음이 한켤 편하다. 이제 잘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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