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식물은 모듈, 어떻게 햇볕을 향해 가니?

타츠루 2019. 4. 4. 10:08

아이들을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내놓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다른 녀석들을 챙겨본다. 한 10년 전부터 녹색을 보는 게 좋더니, 하나 3년 전부터는 좀 키우고 싶어 졌다. 아마도 '식물을 키우는 게 학생들의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라는 내용의 외국기사를 봤던 게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학급 학생들에게 작은 식물 하나씩을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키워봐야 한다. 어떤 마음인지 내 마음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집에 들이고, 서툴러서 죽게 둔 적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집에 8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남들은 참 쉽게 키우는 것 같은 스투키도 죽인 적이 있는 데, 요즘에는 잘 살고 있다. 최근에는 엄마 집에서 산세베리아도 한 뿌리 얻어왔다. 교실에 두라며 학부모님이 선물해주신 고무나무는 학기가 끝나고 교실에 뒀다가 죽일 뻔한 적이 있다. 학기가 끝나고 그걸 집으로 가져와서 간신히 키우다가 한 녀석은 죽고, 하나만 외로이 살아남아 있다. 

 

그간 식물에 대한 책도 몇 개 사기는 했다. 대개 아파트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 식물 세밀화 같은 책으로 정말 식물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은 많지 않다. 그런 정보야 인터넷으로 가끔 얻으면 되는데, 일단 물주는 것을 챙기고, 이 녀석이 햇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헤아리면 된다. 새롭게 들이고 싶은 녀석은 욕실에서도 잘 자라는 녀석. 세수하러 들어갔는 데, 한 구석에 초록이 턱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얼마 전에 아들이 사달래서 먹은 황도복숭아 통조림, 딸이 사달라고 해서 사 먹은 옥수수 통조림. 다 먹고 나서 껍질은 벗기고 안은 깨끗이 씻어 잘 말려뒀다. 크기가 작아서 높이 자라는 녀석을 심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두기만 했다. 어제 생활글쓰기 모임에 가는 길에 꽃집을 보게 되었는 데, 거기 다육이를 내놓고 팔더라. 저런 녀석들이라면 참 잘 어울리겠다 생각했다. 저 캔을 들고 가서 아예 분갈이를 해오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집 몬테라스 : 사진찍히려 매트위로 진출

요즘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녀석은 이 몬테라스다. 블로그에 찾아보니 소위 '찢잎'(듬성듬성 찢어진 잎)을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마트에 차를 몰고 간 김에 하나를 사 왔다. 보는 눈이 없어서 몇 번이고 다른 녀석들과 비교해서 사 왔다. 햇볕 잘 드는 자리에 두니 집에 온 지 이틀 만에 새로운 잎을 내기 시작하더니 아침에 말려 있던 잎은 저녁이 되어서는 가진 잎 중 가장 큰 녀석을 내놓았다. 이 녀석 덕분에 공중 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좀 징그럽다 했는 데, 이것도 뿌리라 나중에 가지를 잘라 새분갈이까지 할 수도 있다더라. 좀 더 커지면 잘라서 해보리라. 물론 괜히 잘랐다가 죽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겠지만, 그리고 정말로 죽어버리면 '이런 똥 손!' 하며 나를 탓하겠지만. 

 

햇볕을 향한 몸짓 

 

   이 녀석에게 특히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요즘 우리집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기 때문. 다른 녀석들도 모두 해를 받으려고 잎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데, 이 녀석은 그 잎의 크기가 남다른데도 그 일을 잘 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게 가장 어린잎이고 가장 큰 잎이다. 이 녀석은 햇볕을 면하고 있는 방향에서 나와서 그런지 그 넓은 매트 같은 잎을 축 늘어뜨리며 나왔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햇볕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세였다. 한데, 한 뿌리에서 나온 저 큰 잎이 출 늘어져 있으니 내 보기에 뿌리가 위태롭다. 넘어지거나 쉬이 고꾸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거실에서 나는 아이들과 풍선놀이를 하는 데, 늘 식물 쪽에 내가 서 있긴 하지만, 아들의 스매싱을 맞기라도 하면 대가 툭 끊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요 녀석들 좀 힘들어도 고개를 돌려보라며 화분을 좀 틀었다. 그러고 저 모습이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저 잎의 대는 저렇게 휘어있지 않았다. 저 녀석도 햇볕 방향으로 조금 더 뻗기만 하면 되었다. 생명을 준 적도 없는 주인이란 놈이 방향을 돌리자 이 녀석은 축구선수가 오버헤드킥 하듯 힘차게 잎을 들어올리고 있다. 그 애쓴 모습이 저 굵어진 대에서 보인다. 

 

 

'식물은 빛을 향해 자란다' 그런 건 배워서 알고 있지만, 이때 나는 당연히 식물은 '중앙집권적 시스템'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지 우리가 모르듯 식물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인간에게는 뇌라도 있지만 식물에게는 뇌도 없다. 허허. 인간보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전체가 하나로 기능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모듈로 만들어져서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무는 전체를 모두 벗어던지 후 대체할 수 있고, 몇 백 년에 걸쳐 나무들은 평생 그 일을 되풀이해왔다. - 랩 걸. p384

 

저 몬테라스의 세포들은 각자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저 하나의 몬테라스를 만들어 낸다. 나는 그게 놀랍다. 햇볕을 등지고 있는 녀석은 어떻게 자기 몸을 밀어 올려야(물론, 세포 하나가 갑자기 자기 몸을 더 늘이는 방식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자기한테서 한참 떨어져 있는 잎에 햇볕이 닿을 거라 상상하고 일할 수 있을까? 

 

 

하루에 한번은 꼭 저 몬테라스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 나는 하나의 인간 개체로 존재하나, 인간종의 일부로 존재하나?

  • 나의 영향은 어디에까지 미칠 수 있을까? 

  • 식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이만큼이라면,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더 제한되어 있을까? 

  • 가장 단순한 것을 정확히 정의해 나가다 보면, 인간 속의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도 조금씩 정의할 수 있을까? 

이제 나도 광합성하러 밖으로 나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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