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뭐하지
가족들과 광주로의 여행은 처음이다. 원래 광주에 숙소를 잡고 이곳저곳을 가볼까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실내시설만 다니기에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서 어제는 미술관 한 곳, 죽녹원으로 끝냈다. 오늘은 무엇을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선뜻 가지 못했던 이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 518민주화운동이 아닌가.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계기교육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들과 가기에는 좀 망설여지기는 했다. 인터넷에서만 검색해봐도, 계엄군의 사격으로 수많은 시민이 죽고 다친 사진을 볼 수 있다. 기록관에 가면 그러한 사진들이 많이 있고, 이게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기록관은 기록관
오늘 설명을 듣고 기록관을 살펴보는 동안 시민들의 시신이나 폭행당하거나 위협당하고 있는 시민들의 사진을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일부였다. 내가 걱정하던 것보다 훨씬 수위가 낮았다. 기록관의 구성은 참혹했던 5월 18일의 실상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인사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가 겪은 이야기를 수집·연구·전시하고 있습니다. 2015년 설립되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보존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을 알리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그동안 수집한 기록물을 DB 화하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기록물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유관기관과 교류‧협력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에도 노력하겠습니다.
진실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자극에 초점을 맞추면 그 진실마저 위협받는다. 사람들의 기부를 위해 헐벗은 아프리카 아이를 영상으로 사진으로 보여주는 데 대한 논란이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뼈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민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충격적인 사진과 영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록관은 그 방향을 잘 찾았다. 모두 충격적이고 분노하게 만드는 내용들이었지만, 악몽을 꾸게 만들 이미지들은 거의 없었다. 혹시나 나처럼 초등학생을 데리고 가는 게 걱정이 된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겠다.
한 시민의 기록도 소중하다
개인의 기록에 관심이 많고, 때마침 며칠 전에 일기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서 그런지 오늘 기록관에 전시된 기록물 중 특히 취재노트나 일기가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이, 여고생이 쓴 일기가 귀하고 또 더 슬프다.
2층 기록물들의 종류에 대한 안내
조한유씨의 일기장
5월 21일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폐허의 아픈 상처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 충장로 왕자관 앞에도 승용차 1대가 불타다남은 뼈대만 음산하게 남았고..
주소연(당시 고3학생)씨의 일기장
강서옥씨의 일기장
해설사님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느라 아이들이 피곤해하기도 하고, 점심때가 다 되어 버려서 시간을 더 갖고 천천히 둘러보지 못해서 아쉽다. 진주 인근으로 가족 여행을 갈 때에도 북으로, 동으로는 가는 데, 광주로는 처음이다. 아내는 이번 광주행이 좋았는지 다음에 다시 오자고 하는데, 그때는 좀 천천히 돌아봐야지.
더 많은 일기는 여기 광주일보 블로그 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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