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가 업무인지라 10시쯤 기숙사로 올라갔다. 사감선생님들 잘 계신지, 아이들 공부 잘 하고 있는 지 보다가 나오는 데, 작년 담임을 했던 지희가 있다.
그냥 공부는 어떤가?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 결국 공부 이야기 밖에 할 게 없다는 건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는 내가 부럽단다.
고3이라는 시기 따위는 다 지내버린 늙은이라 그럴 것.
위험한 시험(수능)을 치고, 겁나는 결과를 다시 받아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그간의 자기 모습을 되짚어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부러운 게 한 두 가지일까.
내가 이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로 돌아가라면..(이런 상상은 건강한 것 같지도 않고, 의미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데 확실히 조금은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 다시 수능 시험을 쳐야 하고,
- 전국의 고등학생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는 줄 속에 드러가 서야 한다.
- 무엇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 돈은 벌 수 있을까 고민한다.
- 누구를 만날 수나 있을까 고민하면서,
- 무슨 돈으로 그 사람을 만나나 고민도 할 것이다.
나에게도 고민이 많고,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헌데, 아무리 봐도 요즘의 아이들이 처한 고통은 나의 그것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아이들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그렇게 대학으로 가도 여전히 많은 해야할 것들의 지배를 받는다. 쉽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재미있는 것을 해’, ‘열정을 가져.’ 이딴 조언을 해선 안된다.
아이들에게 왠지 조언 같은 것을 할때 나는 자주 망설이고는 한다. 그 조언은 그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라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후회이거나 지금의 나에게 하는 조언인 것이다. 그런 조언이라면 말해야 무슨 소용인가. 내가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을. 말을 지칭하는 바가 있거나, 실천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 이야기 하는 것은 어쩜 아주 옳지 않은 일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어. 그래서 좋구나. 라는 이야기 정도만 할 수 밖에.
우리는 확신에 찬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기도 한다. 그건 나 대신 나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리라. 그 질문이 점심메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따위라면 남에게 맡겨도 좋다. 하지만, 내 인생에 대한 질문이라면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보다 내게 질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과 이야기 하며 좋은 점은, 아이들이 나에게 답을 주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도 너무 답을 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는 만큼, 느낀 만큼 말해주면 된다.
네살배기 우리 아들은 요즘 정말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왜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 한거야?” 묻는 게 아니다. 그냥 “왜?”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앞서 던진 “왜?”라는 질문을 따라온다. 그 덕에 요즘은 내가 공부하는 게 많다. 얼마전에는 ‘깨지는 것’에 대해 물었다.
아빠, 나무는 깨져?아니.왜?나무는 부서져.왜?음. 글쎄. 나무는 결이 있으니까.왜?결이 있으니까, 깨진다기 보다는 부서져.왜?글쎄. 나무는 부서진다. 유리는 깨진다. 이렇게 자주 같이 써. 아빠도 이유는 잘 모르겠네.
아들, 과자 먹다가 흘리면 개미가 먹을거야.왜?개미는 과자를 좋아하거든.왜?개미는 뭐든지 먹으니까. 그리고 과자는 달잖아.왜 뭐든지 먹어?개미는 사람이 먹는 건 다 먹을 수 있어.개미는 플라스틱도 먹어?아니, 플라스틱은 못 먹어.왜?플라스틱은 생명이 없는 거잖아. 개미는 생명이 있는 것만 다 먹어.왜?
나는 왜 나무는 깨지지 않는지, 왜 개미는 플라스틱은 먹지 않는 지 설명하거나, 고민해야 한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강요받아서 요즘은 정말 많이 생각한다. 하이데거가 말했다는 생각의 발생의 순간.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가는 것. 재미있는 일이다. 끝도 없는 일이라 지겹지도 않을거야. 내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난 그런 나를 부러워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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