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내 머리를 감겨주는 사람

타츠루 2021. 3. 22. 20:50

머리 자른 사진인데, 뭔가 그로테스크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주말에 가도 되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체해서 하루를 앓았고, 일요일에는 그 미용실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진주로 이사오고 꾸준히 가는 미용실이다. 머리를 자르러 가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열심히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는 열심히 말하는 편이 아니고, 마음에 너무 안 들면 이제 가지 않는다.

일단 내가 별 말 없는데도 내가 마음에 들 게 머리를 잘라주느냐의 문제가 우선이 아니다. 우선, 한 두 번은 잘라보는데, 같은 사람이 잘랐는데도, 내 머리가 늘 비슷한 상태인가도 중요하다. 한 번은 내 그럭저럭인데, 다음번에는 별로라면, 그곳에는 갈 필요가 없다. 원하는 머리 스타일이라는 게 나는 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을 가지고 가서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그게 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너무 묻는 것도 싫다. 머리를 자르는 시간이란 서로에 대해 다 알기는 어려운 시간이고,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도 힘들다. 그저 날씨 이야기나 하는 게 편하다. 직업을 묻기라도 하면 나는 아마 사실대로 이야기할텐데, 직업이 이야기의 주제가 되면 재미가 없다. 내 직업이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 머리를 자른다. 내가 미용실 밖에서 브롬톤 자전거를 접고 있는 것을 보자, 안에서는 벌써 자리를 마련해주신다. 자전거를 들고 들어가 한쪽 벽에 기대어 놓고 자리에 앉는다. “길이만 약간 손봐주세요.” 그리고 내가 할 말은 끝났다. 대개의 이야기는 “오늘은 일찍 마치셨네요?”, “날씨가 춥죠.” 이 정도다.

머리를 자르는 내내 눈을 감고 있는다.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그렇고, 눈을 뜨고 있어봐야 내 얼굴만 보이니 계속 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고, 명상한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있는다. 그 시간이 편안하고 좋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로 머리를 참 잘도 자르신다. 코로나 덕분에 미용사 분들의 스킬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지 않았을까 싶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면, 드라이기로 머리에 얼굴에 목에 묻은 머리칼을 털어 낸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샴푸실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감겨준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나 어리고 어릴 적 엄마가 감겨주던 때였겠지.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빠가 동생을 다라이에 넣고 머리를 감겨주던 때가 기억이 난다. 가제수건에 물을 적셔서 머리를 쓸어 내리며 씻겼다. 몸도 그리씻기고. 새카만 동생을 쳐다봤다. 그러니 엄마도 나를 그리 씻어주었겠지.

목욕탕에 아빠를 따라 갈 때쯤에는 혼자 머리를 감은 것 같다. 떼는 아빠가 밀어줬지만, 머리 만은 혼자 감았다. 혼자 머리를 감을 때는 자주 무서웠다. 눈을 감아야 하는데, 눈을 뜨면 무언가 무서운 것이 내 앞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귀는 두 배는 밟아져서 주변의 소리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어릴 때는 대개 나쁜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무엇이 있는 지 모르니, 무엇이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귀신이나 유령, 괴물 등을 쉽게 믿고 두려워 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없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믿음이 부족해서거 아닐까. 그저 막연히 세상이 겁나는데, 겁먹을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겁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학교 때 머리를 자르러 가서였던 것 같다. 미용사 이모, 혹은 삼촌이 머리를 감겨 주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소름돋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일단 가족이 아닌 사람이 내 머리를 그렇게 열심히 만져대는 게 처음이라 뭔가 견디지 못할 당황스러움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머리를 감겨 주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미용실 이모든 누나든 삼촌이든 이제 눈에 익고 나면 속편히 내 머리를 맡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쥐어짜는 손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미용을 배우는 친구에게 들어보니, 샴푸하는 것도 배운다고 했다. 역시 배운 사람의 손길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커피는 남이 타줄 때, 등도 다른 사람이 긁어줄 때 더 좋지 않던가.

오늘도 미용실 샴푸실에 들어가서 누웠다. 마스크 쓴 위에 수건이 또아리를 틀고 앉는다. 적당한 물의 온도를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쏴아. 이마부터 머리 뒤쪽까지 따뜻한 물이 파고든다. 집에서 쓰는 샴푸와는 다른 향이 난다. 미용실 사장님이 건강한 손가락으로 머리 이곳저곳을 빠뜨리지 않고 씻어준다. 이건 머리를 감는 게 아니라 마사지다. 두피에 사용하는 빗이랄까 고무재질로 된 솔이랄까 그런 것을 꺼내어 머리결을 따라 빗어주는데, 시원하다. 나는 잠시 좀 더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당연히) 하지 않고, 오늘은 다른 사람이 내 머리를 감겨주는 일에 대해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미용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소설이라면, 절정은 샴푸실이다. 그 이후로는 빠르게 결말(혹은 결제)로 이어진다. 약간 덜 마른 머리 때문에, 조금 짧아진 옆 머리 때문에 미용실 밖으로 나오면 어떤 바람이든 알싸하게 느껴진다. 돈을 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의 일부를 이렇게 돌봐주는 분에게 감사하게 된다. 나는 하지 않고 있고, 하지 못할 일이라서 더 그렇고, 내가 내는 돈에 비하면 그 만족감이 커서 더 그렇다.

사랑 때문에 머리를 감겨주든, 돈을 받고 머리를 감겨주든 고맙다. 내 몸 어딘가를 돌봐주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다. 내 마음 어딘가를 돌봐주는 사람에게도 그렇겠지.

흠. 나는 누군가의 무엇을 돌봐주며 밥벌이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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