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인간, 천적을 발명하다

타츠루 2021. 4. 13. 21:09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왔고, 저는 자전거 출퇴근을 하루 쉬었습니다. 비가 와도 비옷 입고 자출할 걸 하는 생각을 하루 종일 했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았고 습기가 여전하지만, 많이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 페달을 밟아 나아갔습니다.

진주 강변까지 이어질 예정(지금은 잠시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끊겨 있음. 2021. 4. 13. 기준)인 새로난 길을 따라 갑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아니지만, 사람도 자전거도 나란히 다닐 수 있을만큼 길이 제법 넓습니다. 요리조리 물 고인 자리를 피해서 가려는데, 땅 위에 동글동글한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냥 밟고 지나갈 수는 없어서 내려 보니 달팽이입니다. 300여 미터를 가는 동안 달팽이를 100마리 이상은 본 것 같습니다.

달팽이

아주 작은 녀석부터 약간 큰녀석까지 달팽이를 피하느라 땅을 보며 자전거를 탔습니다. 와중에 지렁이도 많아서, 다음 번에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달팽이며 지렁이 구경을 하러 나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퇴근을 하는 길에도 달팽이 생각이 났습니다. 달팽이가 이고 지고 가는 그 집은 외피라고 부르더군요. 피부호흡하기 때문에 체내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서 외피에 들어가고는 한답니다. 찾아보니 작은 벌레나 새가 천적이라고 합니다. 과연 달팽이의 외피는 천적으로 부터 달팽이를 얼마나 보호해줄까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각자의 살 길을 도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변화 그 자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진화가 있기는 하되, 천적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적어도 먹고 먹히는 방식에 있어서는 생명체들은 분명한 위계를 가집니다. 먹잇감이 되는 생명들은 자신을 숨기고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만, 천적들은 찾아내고 깨부수기 위한 힘과 지혜를 발전시켜 갑니다. 끝없이 투쟁 혹은 경쟁이 일어나지만, 먹잇감과 천적의 관계가 역전되지는 않습니다. 한 개체가 더 오래 사는 경우는 있겠지만, 먹잇감의 운명은 그저 먹잇감이 되죠.

천적이 있어서 먹잇감의 개체수는 제약됩니다. 이를 균형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이 어떻게 균형을 지키든 인간이 개입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인간은 모든 균형을 파괴하고, 자기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되고, 통치하려고 합니다.

먹잇감과 천적의 관계에서는 체격이나 체력만이 유일한 힘이 되지는 않습니다. ‘지력’도 중요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힘으로 문화를 만들고, 기록과 사회 생활을 통해 문화를 전수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간의 개체수는 누가 통제할까요? 인간의 천적은 무엇일까요.

이미 여러 영화에서 우주인이 나타나서 ‘지구인, 너희는 서로를 죽이고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들을 없애는 게 좋겠다.’ 따위로 말하며 지구를 침입합니다. 타노스는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서 지구 생명체 중 절반을 없애 버립니다. 균형을 되찾겠다며 말이죠.

생물 종 중에 인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하지만 꾸준히 인간은 자기 종의 개체수를 제한해 왔습니다. 전쟁과 환경파괴로 말이죠. 환경 파괴로 인한 죽음은 그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차가 크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가 미세먼지를 마신다고, 내 죽음에 어떻게 기여할 지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금방 산술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진화를 통해 ‘지력’을 높여왔고, 그 지력과 자기 이익 추구라는 덕목 덕분에 전쟁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지구상의 인류의 수를 제한하는 데 이바지 했습니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혐오에 의한 폭력, 정치적 이유에 의한 살인. 전쟁과 같은 모습입니다.

타노스를 막았던 어벤져스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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