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내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

타츠루 2020. 12. 21. 21:47

 

마이클 샌델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있다. 원서 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이다. 직역하자면 ‘능력주의의 폭정’ 혹은 ‘능력주의라는 폭정’이 되겠다. 번역판의 제목이 좀 순하다. 일단 이 책은 2월 먼 북소리 도서로 정했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읽고 있다. 

aladin.kr/p/QyECn 

 

공정하다는 착각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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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문장을 읽다가 나에 대한 글을 하나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우리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어려울 살림이었지만 매사 나에게 따뜻했다. 아버지는 어려서 나와 자주 등산을 가고, 목욕탕에 같이 가서 정성껏 씻겨주셨다. 모두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음하실 때가 가끔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한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화를 낸 일을 기억할 수가 없다. 짜증낸 일도 떠올릴 수가 없다. 오래 단칸방에 살았던 덕분에, 나는 잠에서 깨면서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끌이면서 감자를 썰고 두부를 써는 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소풍날이 되면, 이불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내 옆에서 김밥을 싸고 계셨다. 어머니는 나는 다그치는 적이 없었고, 나에게 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다. 

나는 어느 정도의 학습능력을 타고 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책 읽기는 좋았고, 영어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사회는 지도가 재미있었고, 과학은 내 일상과 동떨어져 보이기는 했지만 동떨어져 있어서 경이로웠다. 딱 하나 음악만큼은 어려웠다. 음악 감상 수업도, 음표나 박자에 대한 수업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과목은 성적에 크게 영향을 주는 과목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음악을 잘하는 학생보다 성적을 받는 데 유리했다. 

나는 노래도 곧잘 불렀다. 덕분에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았고 사람들은 좋아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호감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나는 그런 시선에 제법 익숙해졌다. 초등학교 때에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학교 생활은 그러니 불편한 때가 별로 없었다. 어머님이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서 촌지를 드리거나, 스승의 날에 번듯한 선물을 드린 적도 없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나를 아껴주었다.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조금 마른 편이긴 했지만 늘 적당한 키였다. 너무 눈에 띄지도 너무 눈에 안 띄지도 않았다.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여러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려운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못 되었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간신히 보습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무튼 부모님은 어려운 가운데 모습 학원은 보내주셨다. 가끔 학원비가 늦기도 했다. 당시에는 학원비를 봉투에 담아 직접 갖다 드렸다. 학원비를 내고 나면, 도장을 찍어줬는데, 나는 제때 그 도장을 찍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보습 학원에라도 보내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다. 늘 더 해주고 싶어하셨다. 어머니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주 미안해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과외를 받든, 누가 어떤 학원에 다니든 그건 내가 부러워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 입시는 단순한 편이었다. 수능만 잘보면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게 가능했다. 나는 내 수능 점수에 맞춰서 사범대학교에 갈 수 있었다. 국립대였으니 학비에 대한 부담은 적었다. 하지만, 그 학비도 부담이 되기는 했다. 부모님은 또 세 명의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했다. 학비만 해결한다고 대학생활이 가능한 게 아니다. 생활비도 필요하니 부모님이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행히 과외를 구할 수 있는 학과였기 때문에 과외를 해서 용돈 정도는 좀 벌어서 쓰기는 했다. 

영어교육과인만큼 해가 갈수록 외국에 다녀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교환학생으로, 휴학 후 어학연수로, 아니면 적어도 방학 동안 여행으로 외국에 다녀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얼른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영어를 읽고, 영어교육학 관련한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한 시험이라 외국어 회화나 쓰기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점도 나에게는 운으로 작용했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책을 읽고, 이해하고, 외우기만 하면 되었다. 다행이었다. 

첫번째 시험에서는 떨어졌다. 두 번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리고 또 한 해 더 내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부모님에게 죄송했다. 두 번째 시험을 치는 해에는 유독 많은 신규교사를 뽑았다. 나는 그 많은 수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때 그렇게 많이 뽑지 않았더라면 나는 합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어교사가 되었다는 것이 어떤 '성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꿈꾸는 '성취'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성취가 오롯이 내가 이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다른 사람들 덕분이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약간의 의지와 약간의 노력. 부모님이 내 생활비를 보내고 내 학비에 보태기 위해 평생을 일한 것에 비하면 내 노력은 참으로 우습다. 나는 수능 시험만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내가 시험에 통과했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교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학교에서 '노력하면 무엇이든 된다'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능력주의가 워낙 만연해서 능력주의를 비판한다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우리가 따로 시간내어 공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듯, 능력주의나 공정한 기회에 대한 맹신은 우리가 자주 생각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을 생각해 봤지만, 여기 쓴 것도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대개는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할 때 부끄럽고 미안하다. 누구를 향해 부끄럽고 미안한 지 모르겠지만, 내 노력에 비해 과대평가되는 그때 바로 부끄럽고 미안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우리는 '공정함'이나 '능력만으로 평가하기'에 대해 고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 샌델의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논의는 그런 능력주의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능력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데서 가능한 게 아닐까. 같은 책에서 봤던 '우리가 가진 의견이 우리의 지식을 지배한다'라는 문장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경로로 갖게 된 '의견이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 의견이라는 시각으로 취사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편집된 정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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