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5

엄마의 초록이들, 차례없는 추석음식, 문방구와 엄빠의 목소리

추석 연휴는 시작되었지만, 추석이 되기 전에 부산 집으로 왔다. 엄마는 오기 전날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우리 오늘날에 맞춰서 음식을 하겠다고.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고, 집에 들어서는데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는 차례를 지내지도 않는데, 엄마는 우리 먹이고, 싸서 보내려고 이렇게 음식을 했다. 아빠는 두부를 굽고 있었다. 엄마가 키우는 초록이들은 그 레퍼토리가 더 늘었다. 제법 나무 같아 보이는 녀석도 있다. 엄마의 고향은 강원도다. 어려서 일을 많이 해서 밭일이 싫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일을 잘하고, 뭐든 잘 키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이런 화초를 키우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며 딸 둘, 아들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하루는 고단 했을 테니. 어쩌면 조금은 여유가 늘..

가족은 흔하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집 안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늘 한 가족이었고, 그걸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이지만, 아무런 문제 없는 가족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에 대한 걱정없이 많은 세월을 살 수 있었다. 어릴 때에는 몰랐다. 가족들과 곧 헤어져 내 삶을 살게 될거라는 것을. 누가 설명해줘도 모르지 않았을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나의 하루는 공기 같은 가족을 바탕으로 누릴 수 있었다. 가족이 없는 일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박 3일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도, 늘 돌아갈 곳은 가족이 있는 집이었다. 누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같이 살아서 그나마 우리 다섯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이 길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와 코로나

엄마와 앉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 앉았다. 지난 연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추석 때에도 부산에 오지 않았다. 작년 코로나가 본격화되고 나서 부산에 온 적이 있던가 싶다. 정말, 거의 없다.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설 연휴가 될 것 같고, 그때에도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부산에 왔다. 나 혼자서 차를 몰고 왔고, 필요한 걸 사려고 들렀던 롯데마트에서, 커피숍에서는 당연히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왔으니 좀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도착해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진주로 돌아왔다. 만난 건 오랜만이지만, 전화통화도 화상통화가 가끔 하기는 했다. 그래도 화상통화가 '만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오늘 또 알게 된다. 밀린 이야기가 많아서 아무 것나..

가족이 되는 이유

연휴라 가족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누워' 있을 때는 일단 잠만 자면 잠시나마 쉬는 시간이 있었다. 이제 우리 집에 낮잠을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아이들은 낮잠을 잊었다. (밤에 많이 잔다고 그러기냐!) 하루 종일 아내와 나를 볶아 댄다. 몸으로 놀아주기, 밖에 같이 나가기는 내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데, 역시 아이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후에 집근처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쌀 10kg을 지고, 메추리알, 맥주, 대파, 딸기를 짊어지고 집으로 왔다. 딸은 외출할 옷을 입고 있다. "아빠가 나랑 오늘 산책 간다고 했잖아." 그렇다. 잠시 잊었다. 일부러 잊어서 쏘리. 손만 씻고 사온 짐은 내..

새해 첫 날의 성적

딸과 산책, 유튜브 영상 하나 만들기, 혼자 라이딩, 아들과 밤 산책.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고2 겨울방학. 나는 친구들과 부산 해운대에 일출을 보러 갔다. 일출을 처음 보러 가는 사람이 으레 그런 것처럼, 해가 지평선에서 멋지게 떠오르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해는 저 멀리 지평선에 깔린 구름을 지나 느지막이 솟아올랐다. 기다리기 지친 우리는 서로를 바다에 빠트렸다. 그 이후로 대학생이 되어 다시 한번 일출을 보러 가려했던 적이 있다. 친구들과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비디오방으로 가서 '반지의 제왕'을 틀어놓고 잠들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서사시도 끝나고 새벽의 추위를 뚫고 일출을 보러 출발했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있었던 데다가 관심도 없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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