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라 가족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누워' 있을 때는 일단 잠만 자면 잠시나마 쉬는 시간이 있었다. 이제 우리 집에 낮잠을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아이들은 낮잠을 잊었다. (밤에 많이 잔다고 그러기냐!) 하루 종일 아내와 나를 볶아 댄다. 몸으로 놀아주기, 밖에 같이 나가기는 내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데, 역시 아이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후에 집근처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쌀 10kg을 지고, 메추리알, 맥주, 대파, 딸기를 짊어지고 집으로 왔다. 딸은 외출할 옷을 입고 있다.
"아빠가 나랑 오늘 산책 간다고 했잖아."
그렇다. 잠시 잊었다. 일부러 잊어서 쏘리.
손만 씻고 사온 짐은 내려놓고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딸과 걷는데, 바람이 심하다.
"유치원 두 바퀴"
산책은 길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으로 내가 꼬득인 덕분. 그 사이에 딸과 이쁜 나뭇잎 줍기, 돌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 아빠 품 안에 숨겨주기를 하며 걸었다. 바람은 많이 불어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바람에 몸을 기대니 그것도 재미가 있었다. 딸은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우리가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 가족과 친해졌을까?
아마도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봤던 질문인 것 같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너무 가족주의가 심해서 사회가 정부가 해야 할 일까지 모두 가족에게 떠넘기고, 그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가정조차 유지된다고 했다. 가족주의는 가정폭력부터. 가족 같은 회사 문화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썼다.
책에서는 저 질문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저 질문에 잠시 멈춰야 했다. 그리고 오늘 내 머릿 속을 많이 차지한 생각은 '가족'이다. 부부는 서로 선택했으나, 부모와 자녀는 서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자녀는 긴 시간 양육과 보육을 기대하기 때문에, 부모와 '평등한'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딸과 아들은 '내'가 아빠가 아니어도 나라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바로 "나는 우리 아빠와, 엄마와, 누나와, 동생과 가족으로 만나지 않아도 좋아하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무슨 가족끼리 선택을 하느냐?'며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질문은 가치 있다. 답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내가 내 부모와 형제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생각한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친구가 되는 경우 우리는 관심이 먼저고, 질문이 뒤를 잇는다. 서로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조심한다. 내가 내 부모와 형제에게 그러했던가? 너무 어린 때는 그냥 보내고 나도, 성인이 되어서 나는 부모와 형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미 친하지만' 더 배려하고 조심하고 감사했던가. 잘 모르겠다. 내가 다시 태어나 내 부모를 선택할 수 있고, 내 형제를 선택할 수 있어도 난 선택의 기회 따위는 원치 않을 것 같다. 나는 내 가족에 만족한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고 같은 누나와 동생을 두고 싶어.'라고 말하겠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사랑해왔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내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것. 가족을 너무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해 왔던 것. 그런 생각을 하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동생이랑은 싸운 기억이 많은데, 아마도 내가 군대 갔을 때쯤에는 우리 모두 서로를 인정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을 자주 챙겼고, 동생도 나를 늘 챙겨줬다. 누나는 물론 더 했다. 그렇게 사이좋게 보내는 시간이 길면 좋겠지만, 나는 대학에 입학하며 집을 떠났고, 내가 군대 간 사이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며 더 멀리 떠났다. 먹을 것으로 싸울 수가 없게 되었고, 집에 가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다시 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직장 때문에,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다른 곳에 산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많이 떨어져 있다.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립고 안타깝다.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비롯되는 나의 가정, 내 가족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만큼 이제 자라버렸다. '아빠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아들과 딸은 자기 판단을 키워가겠지. 우리가 가족으로 만나서 좋지만,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고 해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되고 싶다. 언제 어디서 만났더라도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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