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진화'
맥락 상 중요한 단어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그 글을 계속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펼치며, 저자는 도대체 '로컬'이라는 다소 식상한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찾았다.
'지역'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지리적으로 분류되는 개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제규모나 독특한 문화요소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렇다. 칼끝처럼 날카로운 정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로컬'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이미 우리가 너무나 많이 '지방'이나 '지역'이라는 단어를 써버렸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이 쓰면 단어는 힘을 얻기도 한다. 잊혀 가던 단어를 우리는 살려낼 수도 있고, 유행어라는 게 갑작스럽게 탄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주 쓰다 보면 그 단어는 반드시 본래의 의미를 잃거나 가벼워진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현대인의 찌든 삶에 대한 답이 될 것처럼 탄생했지만, 이제는 쓰고 쓰고 너덜너덜해진 단어다.
아무튼, 저자의 '정의'는 납득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로컬'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사정을 들어보니 계속 읽어나가기로 한다. 로컬 비즈니스에 성공한 혹은 그러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가 이 책의 배경이 된다. 확신에 차서 지역을 볼보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지역과 연을 맺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 책은 '로컬 비즈니스'의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지역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로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백서는 아니다. 그 한계를 또한 명확하게 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 기능이 충실하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모두들 우선 얇은 데다가 재미있어서 쉽게 읽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인 우리의 입장에서 이 책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지, 우리 주변의 지인들의 삶을 비춰보았을 때, 이 책은 어떤 부분은 잘 짚어 내었으나, 어떤 부분은 모자 란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우리는 책이 이야기한 것에 머물지 않고, 내 주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로컬'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했지만, 귀농, 귀촌,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지속 가능한 발전, 관광두레, 사짜와 꾼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생에 대한 그림이 다른 것처럼, 내가 그리는 내 지역의 모습도 다 다르다. 대강대강 이야기하면 얼추 비슷한 것 같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보이는 게 들리는 게 다르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마을', '좋은 도시'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
끝까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지만, 결국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무슨 책을 읽어도 이런 지문에 이르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의 업보는 자기 삶의 목적을 모르고 태어나 그걸 찾아 헤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지금 눈 앞에 당면한 문제를 헤쳐 나가면서도, 저 앞에 나타날 무언가를 상상해야 한다. 마치 내 키보다 높은 나무에 둘러싸여 칼로 가지를 헤치고 길을 만들어 오르면서, 좀 더 가면 약수가 흐르는 쉼터나 세상을 조망하는 정상이 나올 거라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옆에 동지가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될 테니, 산에 오르기 전이나 천천히 오르면서 동무를 찾고 만들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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