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엄마가 깨워야 일어난다. 엄마에게 짜증까지 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고맙다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전날 밤늦게 잔 나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생활이 언제 끝날까 생각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어도 계속 일찍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17살의 나는 월요일 아침 교실로 들어가서 "오늘은 미래의 나에게 글쓰기다. 20년 후의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번 글을 써보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그때 나도 미래를 그려보기는 했다. 너무 가까운 미래, 대학 입학이나 군대 같은 것은 상상하면 약간 겁이 났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마치 갑작스럽게 해외로 가게 된 사람처럼 무빙워크에서 나는 멍 때리고 있고, 끝이 보이지만 뒤돌아서 갈 수도 없는 막연함을 느꼈다. 한 20년 후쯤은 상상하기 좋았다. 마음대로 상상해도, 왠지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탁에 두 손을 얹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내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다. 현실의 교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 상상 속 나의 교실은 늘 완벽한 교사와 학생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원이 관념으로만 존재하듯 완벽한 교실은 현실에 없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면 도움이 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완벽이라면, 내가 이룰 수 있는 모습은 완벽을 향해 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꿈꾸던 사람과 영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충분히 책을 사서 읽을 만큼 돈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이상이고, 늘 현실은 이상으로 가는 길을 막는 허들 투성이인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이 원래 그렇고, 현실은 허들이 아니다. 허들을 뛰어넘는 재미. 거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원하는 대로 된다고 인생이 행복한 게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는 데 인생의 재미가 있다. 그 사이에 겪는 어려움이나 아픔은 짬뽕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처럼, 빠지면 안 되는 향신료다. 사람마다 진짜 매운맛을 보게 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순한 맛만 보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각기 다른 모양이고, 행복도 불행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을 달리 한다. 내가 상상하던 나는 이제 짠맛, 단맛, 쓴맛을 알고, 매운맛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제법 키워 왔다.
학생들이 미래의 나에 대해 쓴 글을 보니, 갑작스럽게 감상에 빠져들게 된다. 청소년이라는 시절은 수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시절이다. 가능성은 확인할 수 없는데, 이룬 것도 없으니 외롭고 어렵고 지칠 수 있다. 학생들이 많은 경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고 썼다. 그렇다. 나도 진심으로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나가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나의 것을 비교하지 않고도 행복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매운 인생에 욕을 하고, 하늘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대로 되는 것은 꿈에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내뱉은 말과 행동은 모두 힘이 있다. 사람들이 기도를 마음속으로만 하지 않고 소리 내서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꿈을 적어 보는 것은 쓰지 않으면 내 꿈을 다시 볼 수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씀으로써 나에게 주문을 건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표를 이야기하고, 목표를 수정하고, 나를 다그치고, 나를 응원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나는 아무 곳으로나 떠내려 가는 나무토막이 아니다. 나는 팔을 젖고 다리를 저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장소에서건 어떤 시간에서건 나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니, 어떤 장소, 시간에서건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책임이 되고, 더 많은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된다.
내 인생에 대한 선택만큼은 신중하게, 내가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선택하고 책임지고, 반성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책임지고 반성하는 과정. 그 과정에 반드시 만족과 보람과 행복이 숨어 있다. 내 날개 아래 들어온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한다. 응원글이 좀 길어졌지만.
'학교 관련 > 학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시국 체험학습 준비 : 점심이 관건 (1) | 2021.10.06 |
---|---|
나만 늦은 개학 (9) | 2021.08.23 |
성적표 발송하는 날 (1) | 202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