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500"] [오징어 아저씨][/caption]아침 직원회의.
교실에서 아이들 자습을 지도하다가 본관에 있는 본교무실로 간다. (아이들 자습 지도한다는 건, 떠드는 아이들에게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라는 지도를 말한다. 내일부터 시험이라 금새 분위기는 진정이 된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에게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이 있다. 자습이나 영어듣기는 그 재미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리라.) 특별한 안건은 없다. 학생들의 외투 착용에 대해 지도해달라는 것. 요즘에는 하복이나, 동복을 어떤 시기에 입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학창시절을 기억해보면 그대로 조금 차이가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몇 일부터 하복을 입을 것, 몇 일부터 춘추복을 입을 것.. 이렇게 규정하고 학생들은 거기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복 착용에 대한 규율은 존재한다. 학생들은 추워서 외투를 입으려고 해도, 교복 동복까지 착용하고 그 위에 입어야 한다. 웬만큼 추운 날씨가 아니면 동복 재킷까지만 허용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학교 폭력 예방에 대한 이야기. 물리적 폭력이나 금품갈취 등은 요즘엔 거의 보기 어렵다. 하지만, 메신저나 문자로 친구에게 욕설을 하거나, 험담을 하는 것 등이 문제가 된다. 학생들간의 모든 갈등은 학교폭력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른들이 사회 생활하면서 겪는 폭언들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가지 당황스러운 소식; 학생들이 달아둔 유등을 오늘까지 철거하라는 것이다. 오늘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내일부터는 강제철거 후 버려진다고.
이 사태가 당황스러운 이유가 있다.
우선, 학생들은 유등축제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물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축제장에 걸린 등은 아니지만, 재료도 자기 돈으로 사서, 정성을 들여 유등을 만들었다.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해 잘 만든 것들은 교내상을 수상하고, 만들지 않은 학생에 대해서는 벌점을 준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실제로 벌점은 주지는 않았다.) 헌데, 그렇게 내놓은 작품의 철거 기한을 하루만 주다니 너무 한거 아닌가. 그리고 관련 업무 담당선생님은 어제 오후에 연락을 받으셨다는 데, 당연히 오늘 그 내용이 전달되었으니 갑작스럽게 공지를 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학교 학생들은 내일부터 시험기간이다. 집이 행사장 근처가 아닌 이상 시간을 내서 자기 유등을 찾으러 가야 한다. 부모님께 연락해서 유등을 찾아달라고 하면 될까? 학생이 조퇴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직장에서 조퇴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은가? 그리고 학생들이 유등 달러간 것처럼 철거도 학생들이 직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학생들은 유등을 달아만 두고 구경도 가지 못했다.
유등축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작품을 받아놓고, 유등축제가 끝나니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버린다니… 미리 알려주거나, 일요일부터 철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은 갑자기 시켜도 일이 된다. 원어민 선생님들과 학교에서 일을 할 때, 가장 당혹스러워 하고, 때로 화를 내기도 하는 문제가 ‘갑자기’ 어떤 약속이나 계획을 발표하고 그것을 이행하기를 강요할 때다. 갑자기 졸업앨범 촬영일정이 바뀌었다든지, 갑자기 시간표가 바뀌었다든지… 개인이 일정을 세우고 미리 자기 생활을 규율하려면 한 조직의 계획은 쉽게 바뀌거나, 어떤 지시가 너무 다급하게 내려져서는 곤란하다. 전달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그 사이 자리를 비운 사람은 그 이벤트 자체를 놓쳐버릴 수 있지 않나. 진주시에서 유등축제를 담당하시는 분은 학생들의 유등을 어떻게 생각할까? 돈을 주고 산 작품도 아니고, 성인들의 작품도 아니니 그냥 알아서 철거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걸까? 내년에도 학생들이 유등을 만든다고 한다면, 나는 ‘그래 열심히 만들어봐.’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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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생들은 '유등 수거'를 포기했고, 나는 우리반 학생 몇 명을 태우고 작품을 되찾고 싶은 아이들의 작품을 싣고 학교로 왔다. 웅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들고 기념촬영. 대부분 정성이 들어간 작품들이다. 버려지는 수 밖에 없는 지 의문스럽다. 내년에도 이런 과정이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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