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또 다른 학교 이야기

학교에서 대화가 가능할까?

타츠루 2022. 4. 14. 21:34

대화란 무엇일까. 점점 대화하게 되는 선생님이 늘고 있다. 담임을 할 때는 학년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거의 유일한(?) 대화의 상대였다. 그리고 대화의 주된 상대는 대개는 학생이다. 한데, 올해에는 좀 달라졌다. 더 많은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게 나의 일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꿈꾸지만, 소통하고 있다라는 느낌은 누가 얼마나 갖게 되는 지 모르겠다. 분명 서로 굉장히 친해보이는 선생님들이 있고, 그 분들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느끼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다. 그럼 어디서부터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동료가 출현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누구에게 공감하느냐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이해관계에 부딪힌다고 생각할 때, 서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교사는 대개 학생들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학생은 당연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동시에 학생에게는 상당히 허용적이어야 한다. 어떤 틈을 허용하느냐가 학생의 성장을 결정짓기도 한다.

우선 양보해야 할 대상이 정해져 있으니, 동료간에는 양보가 쉽지 않은 것은 아닐까? 서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건 반드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경우가 또 많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취미에 대한 이야기, 다른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늘 서로의 의견을 조정한다. 나와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받아들인다. 참견 따위는 없다. 그런 관계가 기초가 되고, 거기에 업무는 덤이다. 관계가 잘 맺어져 있으면 업무의 흐름은 덤일 뿐이다.

오늘 한 선생님과 일을 같이 하는데, 선생님 타자가 느렸다. 나는 그 선생님이 타자가 빠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느린 타자 라는 것도 분당 200타 정도는 되는 상태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를 평균으로 잡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일처리 속도도 나의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확인했다. 타자 치는 일은 내가 좀 더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해서 몰랐고, 모르는 만큼 딱 오해하고 있었다.

요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있다. 왜 명작이라 불리는 지 알 것 같다. 이런 경험을 이렇게 써내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학문을 자신의 인생에 제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옆으로 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서로 잘 모르면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를 둔 친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관계의 기초는 그것이고, 관계의 끝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천하고 있느냐 물으면, 답은 아니다겠지만, 계속 노력해야 겠다 생각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비판할 수 있고, 나는 남을 모르고 비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를 쌓이지 않고 흩어진다. 우리 사이에 관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학교가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게으르면, 하나하나 차례차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대화는 급하게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끓는 것은 핏대 세우는 토론에서나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자주 시간이 부족하다. 대화의 전제가 시간이라면, 학교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확보하고, 대화를 열 준비를 한다. 시간을 확보하고 관계 맺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내 역할은 무엇일까. 어렵고도 어렵다. 여러명의 선생님과 이야기하게 되면 될수록 더 어렵다. 나는 판단하지 않고 듣고 있는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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