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또 다른 학교 이야기

욕망의 매개, 대상자a

타츠루 2022. 4. 20. 21:08

이카루스의 추락 이카루스의 추락

한귀은 교수님

우리 학교 전학공 모임으로 오늘은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한귀은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또 하나의 교육, 문화 비평 이었다. 제목도 보지 않고 강의하는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당연히 참석한다고 했지만, 제목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2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교수님은 생각을 잘 이어나갔다. 물론, 이어나가는 길은 이쪽저쪽 쾌속으로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과 "미나리"와 "자크 라캉"을 오갔다.

내 마음대로 요약

기억나는대로, 정리를 해보자.

욕구는 채울 수 있지만, 욕망은 채워질 수 없다. 신드롬은 집단적 무의식 욕망이고, 욕망은 욕망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은채, 신자유주의에서는 인간을 소비하는 인간으로, 소비와 계급 나누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만들어 버렸고, 사람들은 기꺼이 욕망이라는 태양을 향해 뛰어들게 되었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가 바다에 빠져죽는 이카루스 같지 않은가. 아무튼 욕망은 대개 매개를 필요로 하고, 그 욕망의 대상 혹은 그 대상의 매개체를 가리키는 용어 중 하나는 대상자a이다. 욕망과 그 욕망으로 인한 고통, 그래서 우리는 Jouissance 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Jouissance는 고통과 쾌락이 함께 있는 상태다. 욕망은 우리는 목마르게도 하지만, 우리를 움직이게도 한다.

이런 욕망을 제 3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문화비평이다. 수업에 작금의 욕망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골라서 (대)학(원)생들과 이야기해 봄으로써, 학생들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된다. 타인의 욕망에 나의 욕망을 투사하고, 결국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마치 들어본 것처럼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었지만, 쉽게 설명해주셔서 마치 아는 단어들을 다시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양한 욕구와 욕망에 허덕였던 나는 지금은 약간 잔잔해진 기분이다. 자본주의에서 욕구나 욕망의 해소는 대개 자본과 연결된 것이 많고, 중위수준의 소득을 받고 있지만, 일종의 자수성가한 흙수저라서 남들처럼 살려면, 내 자본을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러니 남들처럼은 가당치도 않다. 이 세상이 큰 믹서기라면, 자본은 내 인생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다. 내 인생의 일부의 시간은 오로지 자본을 위해 쓰여졌다. 그것을 손쉽게 소모한다는 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내 인생을 쓰레기에 버리는 방법인가.

또 다른 힘이 될 욕망

오늘 같은 강의에 40명 넘는 선생님들이 오신 것을 보면, 독서 모임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나와 비슷한 동료들이 지내는 이 곳을 변화시켜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다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동료들이다. 사람은 이해 받아야 하는 동물이고, 들어져야 하는(to be heard) 존재다. 한귀은 교수님이 써온 원고에는 의미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한 때에만 소진(burn-out) 된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선택할 수 없으니,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미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면 된다. 이쯤에서는 지금 읽고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 생각났다.

삶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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