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고 부터는 방학 동안 집합연수를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배우고 싶은 게 훨씬 많았을 때, 다 배우러 다니지를 못 했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컸고 올해에는 큰 마음 먹고 집합연수를 신청했다. 얼마전에 원격연수를 들으면서 관심갖게 된 회복적 생활교육 기초과정이었다.
몇 해전부터 경상남도교육청은 학생 지도가 선도나 처벌이 아니라, 회복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공문도 자주 왔고, 특히나 인성부 지도에 있어서 회복적 교육을 지향하라는 공문이 많이 왔다. 어려운 단어가 아니지만, 나는 당췌 회복적 교육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시행하라니 난감했다. 그리고 그게 공문으로 가능하다.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가 정말 우연하게 원격연수를 들으면서 그 방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비폭력대화'와 그 결을 같이 한다. 몇 달 전에 자전거로 출퇴근 할 때보니, 진주시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비폭력 대화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회복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놓고 본다면, 대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어떤 종류의 폭력이라도 그것이 폭력이라면, 학폭으로 진행된다. 학폭은 조사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고, 가해자를 기준에 맞추어 처분한다. 잘못이 크면, 벌도 크다. 형법을 보면 회복적 정의에 대치되는 응보적 정의의 작동 방식에 대해 더 쉽게 알 수 있다. 범인과 피해자. 둘은 법정에서 만나고, 검사는 범인의 죄의 양에 따라 구형하고, 판사는 선고한다. 범임(가해자)에게 그 범죄에 가장 합당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 중심에 있지 않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일단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인 경우가 많지만, 가해자를 엄벌할 수 있는 것은 법원이고, 고로 가해자는 반성문을 써도 판사에게 쓴다.
회복적 정의는 우선 논의의 중심을 사건의 상황과 피해자의 피해에 둔다. 어떻게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가 초점이다. 이를 위해, 상황을 파악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야 한다.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시간도 에너지도 더 드는 일일 수도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떠하든 간에, 학교 안에서 학생들 간의 문제는 '교육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벌을 주고 상황을 매듭짓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대화의 방법과 패러다임의 변화
어제 오늘 이틀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응보적 질문을 체험하고, 회복적 질문을 만들어 보고, 신뢰써클을 경험하면서 회복적 정의라는 접근 방법에 매력을 더 느끼게 되었다. 이 연수를 듣기 전에도, 나는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 라는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대해 큰 힌트를 얻은 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요령 중 하나는 어떻게로 질문하라는 것이었다. 회복적 정의에서 이야기하는 상황파악이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질문들도 비슷한 방식이다. 피해자를 처벌하거나 교정하려고 몰아가는 질문이 아니라, 피해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는 데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한 질문을 찾아간다. 이러한 방법은 인간을 긍정적인 존재로 전제해야 한다. 적절한 질문으로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면, 누구라도 행동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 중에, 관계된 사람들의 공동체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실제 사례에 기반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엘마이라라는 작은 동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 회복적 정의라는 접근 방법의 씨앗이 되었다. 22가구의 집 안 팍을 쑥대밭으로 만든 2명의 청소년.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피해자와 만나 피해자가 겪은 피해를 직면하도록 하고, 피해자들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조정하여, 피해자도 가해자도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청년들은 바르게 자란다. 이 기법이 대단한 철학이나 심리학은 아니지만,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들었던 분명한 사례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방식의 초점이 피해자에 있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피해자가 없는 문제도 있지만
가끔 학교에는 명확한 피해자는 없지만, 여전히 문제가 되는 학생들의 행동도 있다. 이런 문제를 회복적 생활 교육 방식으로 모두 교정하지 못할 수는 있다. 별도의 처분은 처분대로 이뤄질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의 목표는 잘못된 행동을 규정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징벌하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이 더 잘 이해하게 되면, 믿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평화롭게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더 공부해 봐야지
이틀 듣고 이야기해본 내용을 정리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회복적 정의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연수 말미에는 신뢰써클을 만들어 보고, 어떻게 진행할 지 기획까지 해봤다. 누구에게도 혹시나 상처가 되지 않을 질문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도할 만하고 공부할 만하다.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잘 몰라서, 어떤 사람에 대해 잘 몰라서, 섣불리 판단하고 그룹에서 배제시키기도 한다. 당장 부처나 예수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우리 주변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학교에서의 학생들은 아직도 자라고 있는 존재다. 변화의 가능성을 성인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존재들. 그 학생들을 대할 때, 윽박지르고 화내고 벌을 주는 방식은 온당하지 않다. 우리에게 윽박지르고 화내고 벌을 주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애정을 느낀 적이 있던가?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을 위해서만 변하거나, 그런 사람에게만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 들은 과정은 기본과정이었다. 중급 과정도 있으니, 다음에 연수가 나오면 바로 들어볼 생각이다. 선생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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