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보통 사람이라, 세상을 먼저 내가 기억하는 기준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많이 그렇다. 일단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 지를 더듬어 아들을 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아들과의 관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말문이 트이기 전까지의 좋은 기억은 오래 간다
내 첫 조카는 이제 고1이다. 누나 내외가 대구로 갔다가 인천으로 가면서 나는 조카를 자주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조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결혼 전이었고 시간이 많았다. 틈만 나면 조카를 보러 갔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미끄럼틀에 올려주고 내려오는 걸 받는 것이었다. 걷고 말하게 되었을 때도 조카가 하자는 대로 놀아주면 됐었다. 조카는 삼촌인 나를 좋아했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상당히 떨어져 지냈다. 하지만, 지금 만나도 애틋함이 있다. 더 자주 봐야 하는 데 못 보는 아쉬움을 우리 둘은 깊이 느낀다.
나는 아이들이 명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몸에 새겨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이 말이다. 아이들은 누가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누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열심히 놀아주는지 다 기억한다.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최애 멤버는 정해진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말을 하기 전의 아이들과 노는 것은 좀 단조롭고 내 수준에 안 맞을 수는 있어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 아이들은 말할 수가 없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싸움이 안 되는 상대이니 늘 협력이 가능하다. 가끔 아니면 자주 아이들이 원하는 것 같지 않더라도, “아, 그래 이거 해달라고?” 라며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버릴 수도 있다. 아들과 열심히 놀아준 덕분에 나는 ‘말문 트이기 이전의 좋은 기억’ 심어주기에는 성공했던 것 같다.
말이 트이면 어렵다
말을 하게 되면 어렵다. 자기의 주장이 생기게 되니 정말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내게 된다. 그리고 말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완전히 독재자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온 집안을 괴롭힌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독재자이긴 하지만, 늘 눈치를 본다. 모든 걸 원할 수는 있지만, 많은 것을 혼자서 해낼 수가 없다.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를 받아들인다.
4학년이 된다
내가 4학년이라는 시기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순전히 나의 경험이다. 오래되는 모든 것들은 그 형체가 희미해진다. 사람의 기억도 그렇다. 초등 6학년 때 기억이 더 잘 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약간 양이 많은 정도다. 그리고 유치원 때의 기억과 다른 점은 나의 판단이나 기분이 그 추억에서 중요한 플롯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비판적 일 수 있었다. 특히나 선생님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때쯤에 아빠와 엄마에 대한 생각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하던 시기들. 그 시기가 끝나게 된다. 4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른들의 말이 모두 맞지도 않고, 어른들이 늘 옳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자각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을 나무라면서 부모님을 언급해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옳은 말이 없는데, 그런 말로 나를 나무라다니.
그래서 아들과의 관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 아들은 나의 말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아들이 자랐다는 말이다. 기뻐해야 하며 이제 더 세심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리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아들과 함께 찾아봐야 한다. 아들에게는 더욱더 이유를 들어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표현하고, 섭섭한 마음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들은 언제 어른이 될까
오늘 아들이 엄마랑 학원 영어 숙제를 하다가 결국 둘 모두 기분이 나빠진 채로 끝나버렸다. 아들 옆에 앉아서 일단 설명을 듣고 숙제를 같이 한다. 일단 숙제는 끝내고, 아들을 방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이제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엄마, 아빠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무엇이든 억지로 시키지는 않으려고 하고, 되도록이면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려 한다. 부모로서 당연히 너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옷을 사주고, 책도 사주고, 사랑도 주겠지만, 네가 그걸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만큼,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을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려 한다면, 엄마나 아빠한테 가져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중략.... 아빠는 아들은 정말 사랑해. 동생이 태어나기 전 4년 동안 오로지 아들에게만 사랑을 주며 살았어. 아빠는 늘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고, 우리 가족이 모여서 무엇을 하든 즐거웠으면 좋겠어.’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가끔 뭐라고 물어도 아들은 대답이 없다. 그런데 보니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고 있다. 나는 아들이 우는 걸 보면 나도 따라 눈물이 난다. 내 눈물의 스위치는 아들이다. 아들 눈물을 닦아주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린다. 아들이 나보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고, 나는 그런 아들과 늘 잘 지내고 싶다.
4학년 아들에게 필요한 아빠
4학년 아들에게는 어떤 아빠가 필요할까. 4학년 아들이 자라는 동안 함께 자란 아빠가 필요하다. 4학년 아들이 커가는 만큼 같이 성장할 아빠가 필요하다. 아이를 존중하고, 더 자상히 설득하는 아빠가 필요하다. 나는 내 안에서 그런 아빠를 찾고 있다.
아들, 사랑해.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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