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오로지 아들 생일

타츠루 2021. 3. 13. 20:55

물건 고르러 가는 가벼운 발걸음

아이들은 모두 그런가 아님 우리 아들이 유달리 그런가. 아,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아침 7시 아들이 미역국을 앞에 놓고 울고 있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아들의 울음 소리에 어리둥절해서 일단 식탁에 앉는다. 아들이 우는 이유는 ‘생일인데 가족 모두 같이 밥을 먹으며 축하해 주지 않는다’ 는 것. 평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밥 먹는 걸 좋아하는 아들인데, 생일이라고 이렇게 달라지기냐?

아침 밥 먹고 나서는 곧장 나가서 택배 하나를 보내고, 아들 케이크를 사왔다. 화상채팅을 하며 아들에게 케이크를 생중계하고 마음에 드는 녀석을 사가지고 왔다. 아들은 폭죽을 터트리고 동생은 겁이 나서 다른 방으로 가고. 그래도 케이크에 기분이 좋은지 초콜릿 토핑은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어제는 동생에게 오빠 생일을 맞이해서 소원 두 개를 들어달라고 언약까지 받아놓았고, 그 언약이 뒤틀어지면서 또 한번 울었다. 아들은 동생의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어졌고 어제 말했던 그 소원 둘 중 하나를 쓰기로 했다. 딸은 그 소원 이야기는 기억하지만, 자기의 소중한 인형을 오빠에게 빌려줘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들은 약속 안 지키는 동생에게 짜증나서 울고, 딸은 결과도 모르고 약속을 한채 자기 소중한 인형을 빌려주는 게 싫어서 운다. 오늘따라 내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까. 마치 솔로몬이 재림한 듯 둘의 이야기를 듣고, 판결을 내리고, 서로 화해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차려준 수제비를 먹었다. 오늘 수제비값은 톡톡히 했다.

아들과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한다. 매일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길을 가보기로 했다. 서부청사를 지나야 하는데, 선별진료소 쪽으로는 가기가 겁이 나서, 서부청사에서는 약간 길을 돌아 갔다. 바람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햇볕만은 봄이었다. 금세 내 일터에 도착했다. 운동장에 버려진 바람빠진 축구공이 있어 둘이서 공도 조금 차고, 운동장에서 자전거도 타고, 구석에 있는 철봉에도 평행봉에도 매달렸다. 편의점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도 사서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 있는 주택을 보면서 주택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우리 둘만의 상상을 했다.

어쩌다가 사춘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 : 사춘기가 되면, 엄마, 아빠 말은 다 잔소리 같고, 친구만 좋아지는 시기가 되는 거야. 엄마, 아빠가 꼭 싫은 것은 아닌데, 친구 말이 좋고 친구랑 같이 있는 시간이 좋은 거지, 엄마, 아빠가 모르는 아들의 세상이 커지는거야. 지금도 벌써 아빠 말이나 엄마 말 안 들을 때가 있잖아.
아들 : 응. 그냥 지금 사춘기가 오고 나중에는 엄마, 아빠만 좋아하게 되면 좋겠다.
나 : 어릴 때는 엄마, 아빠만 좋아했잖아. 이제 조금씩 엄마, 아빠가 모르는 일도 생기고. 곧 친구들이 더 좋아지겠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와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좋지. 혹시나 친구가 마음 아프게 하면 너무 외로워지잖아. 그럼 언제든 엄마, 아빠한테 오면 되고. 엄마, 아빠가 들어주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질 때가 있잖아.
아들 : 응.

코로나가 심해져서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진주문고에 들르기로 했다. 엠비씨네점이나 본점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쉽게 말하면 세련된 분위기인데, 달리 말하면 실험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장의 1/3 정도는 굿즈나 팬시용품이 차지했다. CGV가 들어오고, 뽀로로테마파크가 있는 공간이니 진주문고에 들르는 사람들도 아마 가족단위이지 않을까. 그런 고객을 타깃으로 한 것일까. 아무튼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 서점이 있다니 너무 좋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기도 편해졌고. 오늘은 내 책을 한 권만 샀지만, 가까우니 더 자주 들러서 더 많이 살 수 있겠다. (이런..) 그리고 집으로.

집으로 오면서는 아들에게 저녁으로 뭐가 먹고 싶은지 물었다. 통닭 집 근처 알통강정에 들러서 통닭(크리스피)을 주문한다. 맛뵈기도 얻어먹고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아들, 생일인 하루가 너무 짧지?”
“응”

늘 생일같은 하루를 살 수는 없겠지만, 늘 네가 내 아들이 되어 주어 고마워. 아직도 모자란 아빠라 면목이 없다. 앞으로 잘 할께. 사랑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