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학급이야기

소감문 잘 쓰라고 이야기 하려다 다크나이트 이야기까지

타츠루 2021. 10. 26. 21:36

진로체험학습 질문

책임을 지겠다고 선택할 때 힘을 가지게 된다.

오늘은 학생들에게 쓴 소리를 하고 말았다.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실망했고 걱정된다고 했다. 여러가지 불만족스러운 부분에서 시작했겠지만, 체험학습 후 소감문을 받았다. 체험학습을 가기 전에 질문을 받았고, 그 질문 중 두 개 정도를 선택해서 소감문을 쓰도록 했다. 그런데 여러 명의 학생들은 분량도 내용도 부족했다. 질문 하나에 두 줄 정도 답을 쓰고, 관찰한 내용도 깊이가 없었다. 더 나은 관찰을 위해서 더 지도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지금 고 1의 경우, 자소서도 없고 교사 추천서도 없어서 생활기록부 기록이 중요하다. 모두 교사가관찰한 내용을 쓰는 것으로 학생들이 어떤 내용을 선택하거나 기록을 요구 혹은 부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업 활동이나 학급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있다. 각종 행사 후의 소감문이나, 적극적으로 발표에 임하는 게 일단 제일 좋은 방법이다.

대학교 입시가 복잡하다고는 하나, 결국 어떤 학생이 발전가능성 있는 학생인가라는 표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고, 그럴 수 밖에 없다. 단순히 교과목 성적이 높은 것으로는 그 발전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렵고, 앞으로의 사회가 성적만 높은 사람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애초에 성적만 높은 사람을 뽑았던 사회가 공정해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저 에 따라 부모의 유전자와 사회적 자본을 상속받은 상태에서, 의 요소는 무시하고 능력만이 가장 훌륭한 잣대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다가 성적이 높은 사람들을 뽑았으되 그들은 우리사회의 빛이나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되지 않았나. 그럴 때마다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댓글을 보면 피식 웃을 수 밖에 없다.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게 쉽지는 않다. 내 성격과는 달라서 발표가 힘들 수도 있다. 이를 대학에 가려면 열심히 해야지라고 설득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목표가 대학이라는 외적보상이 되는 순간, 그 보상을 따내려가는 길은 더 지루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더 많은 학생이 수업을 포기하고 잠을 자는 이유 중 하나가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공공연하게 대입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공부 자체의 재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대입을 위한 내신이라는 강력한 도그마가 교실을 지배하고 학생의 머릿 속과 학부모의 마음 속을 지배한다. 교사의 그것은 말할 것도 없다.

뻔히 대입이라는 출구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이 그저 눈 앞에 있는 과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를 바란다. 어떤 것에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과업을 수행할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하다보니 의미를 찾게 될 때도 있다. 여러 영역에서 아는 것도 경험도 부족하니, 우선 더 많이 알고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

밤에는 잘 자고, 낮에는 수업 잘 듣고, 남는 시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더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다. 그 틈새에 성적이 파고 들고, 모자란 성적을 보충하기 위해서 학원에 가고, 학원을 더 가게 되고 그러다가 잠자는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결국 균형이 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더 선택하고 책임을 느껴보라고 이야기한다. 이룬 것이 없어 불안하고, 무엇이 될지 몰라 갑갑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통제하는 데서부터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과 행동 뿐이다. 그것부터 쉽지 않다. 하지만, 거기서 시작할 수 밖에 없고, 늘 그 문제를 다룰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배트맨 다크 나이트’이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를 선택하는 게 핵심이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오해 받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힘을 어디에 쏟을 지 결정하는 순간 그는 배트맨이 된다. 영웅은 그가 가진 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가 가지는 책임만큼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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