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학급이야기

모범학생 표창을 어떻게 줄까나

타츠루 2021. 10. 29. 21:50
제자리

정신없는 일상은 계속되고, 학교 생활은 줄어들지 않는 양초같다. 타오르고 타오르고 타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웃음을 찾게 된다. 그리고 나는 분명 예전보다 더 많이 웃어주고 있다. 웃어야지 생각하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을 대하면서 자꾸 후회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작년보다 내가 나아진 것 같으면, 작년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된다.

11월에는 학생들에게 모범상 표창을 한다. 일년에 두 번, 혹은 세 번 가량 학급 학생들 중 모범이 될 만한 학생들에게 상장을 주고는 한다. 올해 1학년부터는 대입에 수상기록은 반영되지 않지만, 어쨌든 의미있는 기록이다.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오로지 대입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기준을 두고 짜맞춰 지는 것 같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있는 것은 의미있는 것으로 남을 수도 있다.

모범표창의 대상을 어떻게 뽑을까


교사가 학생들을 열심히 관찰해도, 교사의 관점에서만 학생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복잡한 화학반응과 같아서,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반응의 속도도 크기도 양상도 달라진다. 그 속에서 좋은 변화로의 촉매 같은 역할을 하는 학생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학생들이 어쩌면 가장 모범적인 학생을 선별하는 데 더 뛰어날 수 있다.

창체시간,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종이를 엽서크기로 잘라서 한 장씩 나눠줬다.

“11월에는 모범학생 표창이 있습니다. 우리 학급 친구 중에, 여러분에게 모범이 될만한 사람, 다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여러 장점을 가진 친구에 대해 써주세요. 두 명을 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이유도 써주세요. 자기 자신을 쓰면 안됩니다. 왼쪽 아래에는 여러분의 반번호와 이름도 써주세요.”

마치 새로운 반장선거 같았다. 학생들은 눈을 굴리며, 딱 2명을 골라야 한다는 데에서 벌써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써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범적인 학생과 학생들이 선택한 모범적인 학생이 같았다. 학급 학생 수의 절반 정도로부터 칭찬을 들은 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공통된 칭찬은 학교 활동에 모두 열심히고, 매사 긍정적이며, 친구들이 어려워 하는 게 있으면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그래 잘 하고 있구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추천서도 썼다. 학생들이 써준 그대로를 조금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누구를 줘야 하나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칭찬을 받은 학생들을 살펴보며, 학생들끼리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 지 그려볼 수 있었다.

좋은 일로 전화하기

추천서는 그렇게 정해서 내고, 학생들 이름별로 칭찬을 모았다. 한 장에 두 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으므로, 종이를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이름에 따라 칭찬 카드를 모았다. 그리고 칭찬의 주인공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걸 읽은 주인공들은 조금 부끄러워 하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받아야 할 칭찬을 받은 것 같은데도, 학생들은 겸손했다.

오늘 오후, 가장 칭찬을 많이 받은 학생 두 명의 학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학교에서의 전화란 대개 별로 반갑지 못한 것이고, 또 대개의 경우에는 안 받는 게 좋은 것이다. 가끔 좋은 일로, 학생의 긍정적인 변화를 전하려고 전화를 하기도 한다. 두 분의 어머님께, 이러이러해서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두 분 모두 기뻐하셨다. 좋은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제 입으로 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전화 드렸다고도 말씀드렸다.



종례를 했어야 했는데..


한 학부모님은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잘 이야기 하지 않는데, 전화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우리 학급 아이들은 오늘 마지막 수업이 체육이었다.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나는 8교시 수업도 가야 해서 종례를 하지 못했다. 주말 잘 지내라고 인사만 하고 보냈다. 종례를 했다면, 할 얘기가 있었는데 그걸 잊었다.

얘들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려라. 부모님은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해 하고 계셔.


라고 말이다. 월요일에 가면 잊지 않고 말해줘야지.

고등학교 1학년 시기는 학생이 자기 자리를 잡아 가는 시간이다. 요가를 할 때,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몸을 옆으로 흔들며 몸의 무게가 모두 땅에 편안하게 내려앉도록 하지 않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올라온 고등학생도 그런 시간을 가진다. 편안하게 앉아 있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이 모두 다르고, 거기에 쏟는 노력이 모두 다르다. 2학기가 끝나가는 즈음이 되어서야 학생들은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대나무 순처럼 쑥쑥 자라는 학생들이지만, 그들에게도 변화는 어려운 일이다. 높은 밀도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몰려드니 마음도 몸도 힘들지 않을리가 없다. 그래도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그런 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교사가 있고 부모가 있다. 내가 담임을 했었던 다른 학생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때만큼 많이 부족했었는데도 과분하게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구나 생각이 든다. 더 사랑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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