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우리 학교 종업식 및 졸업식날이다. 졸업식이야 더 이상 조용하게 치러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게 치러지니, 내일도 학교는 조용하겠지. 종업식은 각 학년의 업무가 끝나야 하겠지만, 내일이라고 업무가 끝나지는 않는다. 내가 맡은 1학년들은 이제 내일까지만 1학년이니 학년도가 끝나는 시점이기는 하다.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교실을 청소하고, 생활기록부를 계속 손보느라, 결국 2022학년도 개학 전까지는 일이 계속되는 시간이겠지만.
엊그제부터 시작한 우리반 학생들과의 상담을 오늘에야 끝냈다. 우리 반 수업이 아닌 시간도 바꿔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들과 둘이서 앉아서 짧게나마 지난 일 년 동안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또 좀 더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담임으로서 학생들을 알아가는 데는 늘 한계가 있다. 아니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시간은 23명의 학생들을 속속들이 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를 서로를 드러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서로를 알 수가 없다. 학생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학년도 수업에서 더 신경 써봐야지.
학급에 남은 학급비, 학생들이 잘 해서 받은 학급 상품권으로 오늘은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학교에서 먹을 수는 없으니 마치는 시간에 맞춰 배달 주문을 하고, 종례 후에 바로 나눠주고 아이들을 보냈다.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난 교실은 자주, 파도가 없는 바다 같고, 물이 마른 강 같고, 나무가 없는 산 같다. 나는 홀로 내일 종업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방학식, 종업식, 졸업식 같은 날에 주어지는 담임시간은 곤혹스럽다. 무얼 준비해야 할까 고민이 되어서 그렇고, 무얼 준비하든 참으로 새삼스러워서 그렇다. 교사란 가면 갈수록 말을 길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지는 직업이라, 무엇에 대해서든 이야기 시작하면 한 시간도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편지를 쓰기로 했다. 학생 하나하나에게 편지를 쓸까 아주 잠시 생각했지만, 거의 비슷한 분량에 거의 비슷한 밀도의 편지를 쓸 수 없어서 포기한다. 아무튼 편지를 썼다. 쓴 편지를 블로그에 올리고, 오늘 블로그 포스팅까지 일석이조로 노려볼까 했지만, 혹시나 내 블로그를 아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어서 편지 공개는 내일 하기로 마음먹는다.
편지를 쓰고,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며 고친다. 별 할 일 없는 시간에 보라고 우리 반 사진도 모아서 슬라이드 쇼로 보여줄까 한다. 그리고 짜잔, 편지를 다 읽고 나면 가라~~ 해버려야 되는데, 가능할까. 일단 청소를 깨끗이 하고, 사물함과 책상 안을 다 비우고, 우산도 다 치우고 나면 가능할지도. 깨끗이 청소는 정말 어려운 일이 되겠고, 대충하고 보내고, 나 혼자 다시 해야지. 아마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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