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사적이지만 공적인 것 같은 모임을 했다. 흥미로운 대화가 많이 오갔지만, 그중 대화 참가자들이 감정을 가장 많이 드러낸 부분은 이 학교라는 표현에 대해서 였다.
어떻게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를 ‘이 학교’라고 할 수 있나. 마치 그건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 ‘우리 집’이 아니라 ‘이 집’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는가.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직원의 경우, 한 학교에서의 근무는 대개 5년이 되지 않는다. 짧게는 1년이 될 수도 있고, 길어봐야 5년이다. 내 주변을 보건대, 3, 4년인 경우가 많았다. 중고등학생들은 3년간 학교를 다니니까, 보통의 경우 학생들보다 더 오래 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기는 한다.
‘이 학교’라는 표현은 다분히 객관적이고 거리감 있다. ‘이 학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라면 마치 학교를 평가하는 외부인이 하는 질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도 2021년도에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대해서 ‘이 학교’라는 시각을 가졌었다. 떠나온 학교가 ‘우리 학교’, 지금의 학교는 ‘이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중학교는 하나, 자신의 고등학교는 하나다. 유일한 것에는 ‘우리’를 붙이기 쉽다. 우리말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당연히 ‘나’를 확장한 형태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교사에게 한 학교란 교직 생활이라는 여러 학교 사이의 여행 혹은 이동의 한 지점이 된다. 어쩌면 한 사람의 교직 생활 전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결국 근무한 학교들은 모두 ‘이 학교’, ‘그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근무하는 ‘우리 학교’라는 인식은 언제쯤 생겨나는 것일까? 위 그림으로 나타내 봤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근무하는 학교에 대해 ‘우리’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그러니 늘 ‘우리 학교는 이렇고 저렇고’라고 말하게 되어 있다. 학교에 대해 자랑할 때든 비판할 때든 대개는 그렇다. 부조리를 목격하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했다면 가끔 ‘이 학교’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는 말로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에서 편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언제 나는 지금 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을 ‘우리 학생들’로 인식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았을까. 교사들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쉽게 하려면 담임을 하는 게 좋다.”라고 말한다. 그 적응이란 ‘이 학교’를 ‘우리 학교’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아닐까. 좋은 동료를 얻게 되었을 때에도 분명 ‘우리 학교’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좋은 동료를 만나고 알게 되는 것보다 ‘많은 좋은 학생들’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게 더 빠르게 성취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상황은 한 학교에 근무하는 시간이 쌓여 가면서도 그 학교를 ‘우리 학교’가 아니라 ‘이 학교’라고 부를 때 아닐까. 그런 분을 본 적이 있다는 말씀을 어제 들었다. 나는 떠올리려고 해도 그런 분을 본 적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학교에 적응을 하고 나서 ‘우리 학교’라고 말하게 될 수도 있지만, 먼저 ‘우리 학교’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어떨까. 말에는 힘이 있고, 내 입에서 나온 말도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곳은 우리 학교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증언은 힘을 가진다.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도저히 객관적일 수 없다. 학교에 대한 비판도 변화도 나에 대한 것이 된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고,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할 때 발현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그러니 우리 학교에 대한 비판은 내 행동의 변화도 요구하게 된다. 객관적인 외부인의 평가로서의 비판은 쉽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 대한 나의 비판은 좀 더 진지하다. 비판은 할 수 있으나, 그 비판에 대한 변화도 내가 추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는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 학교’를 ‘우리 학교’로 인식하고 있다. 나의 동료들이 있고, 나의 학생들이 있는 곳. 공동체에 대한 적응은 공동체가 나를 얼마나 환대해주느냐에만 달려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가 얼마나 공동체의 일원임을 빨리 선언하고 자각하느냐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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