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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있게 책상 앞에 앉아 촛불을 켜고 노트북을 열고, 심험실에 가서 친구나 논적과 논쟁을 벌이고, 성스러운 섬에 틀어박혀 계산을 하고, 새벽녘에 바위산을 기어오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차를 마시고 벽난로 불을 지피고 다시 자판을 두드리면서 몇 가지를 조금 더 이해하고, 기존의 해도를 집어 들어 그 한 부분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죠.
양자물리학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내 얄팍한 이해로는 고전물리학 혹은 거시세계가 설명하는 방식과 양자물리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두 가지 방식이 하나의 설명에 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세상은 시간의 경과로 이뤄지지 않고 입자에 가까우면 작아질 수 있지만 그 작아짐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사물이 확정적이고 뚜렷하고 경계가 완전한 것처럼 보는 것은 우리가 더 깊이 쪼개어 볼 수는 없어서 그렇다.(저자는 근시안이라고 설명했다.) 물리계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데, 거시세계에서 보는 물리계의 대상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대상들이 서로 작용하는 상태의 덩어리라 그 상호작용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고 확률적으로 마치 예측가능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 부분은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으며 탐구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즐겁다. 나라는 실재는 더 작은 단위들 사이의 관계에 의한 것이고 결국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내 탄생이 우주 찌꺼기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내가 지금 바로 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나처럼 커다란 개체는 또 다른 커다란 개체는 타자를 만나서 상호작용한다. 입자와 입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순간 정보 혹은 성질이 나타나는 것처럼, 나와 타자는 관계를 맺는 순간 나의 성질이 드러난다.
나는 어떠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나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을 때에도 나는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상호작용 그 자체만이 나를 드러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온전한 경계를 가진 나라고 하기 어렵다. 그저 일정부분 일관성을 가진 개체이면서 타자와 상호작용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에만 내가 성질을 드러낸다는 점은 얼마나 멋진다. 우리는 '나'라는 개념에 그다지 갇혀 있을 필요가 없으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발견시킬 수 있다. 상호작용하는 한, 나는 끝임없이 나의 실재를 발견하게 된다. 양자물리학은 실존주의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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