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어젯밤 할머니가 좀 더 버텨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잠들었으나, 새벽에 울리는 진동 소리에 깼고,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바로 9시 기차를 예매했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빠 입원실을 지키기로 했다. 그 새벽에 서둘러 챙길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일어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밥먹고 나서 출발하고 싶었다. 주말 내내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난 딸 옆에서 웃겨주고 간질어주고 같이 놀았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딸은 가지 말라고 했다. 울지는 않았지만, 가지 말라고 하기는 했다.
적어도 3일은 보내게 될테니, 나는 속옷도 갈아입을 옷도 챙겼다. 마치 여행가는 사람처럼 짐을 챙겼다. 뭔가 빼먹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자꾸 찜찜했는데. (물론 빼먹은 게 있었다.) 부산으로 오는 길, 최대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제 운전은 더 조심해야 하겠다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안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엄마는 병원에서 바로 서울로 갔다고 했다. 서울은 여기보다 훨씬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는 간 것일까. 내려오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벌써 울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바랬고, 울터라도 밥도 먹고 물도 마셔가며 울었으면 하고 바랬다. 누나 내외가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나중에 들으니, 외할머니 장례는 교회식으로 진행되어서 곡이 없다고 한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울음이 없으니, 상주들도 덜 울어도 되겠다. 눈물이라는 게, 울고자 하면 자꾸 더 나오는 것이고, 우리이 장례라는 게 상주는 울어야 하는 자리라 사람을 더 넋놓게 하지 않나. 예전의 장례가 어떠했나 모르겠지만, 이제는 상조회에서 차려주는 다 똑같은 메뉴의 음식과 눈물만 남았다. 장례는 교회식이 더 좋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참으로 잘 우는 사람이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같이 눈물이 나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가 우는 걸 오늘 나는 보지 못했지만, 엄마의 눈물은 목놓아 우는 그런 눈물이다.
아빠의 하루는 단조롭지만, 그래서 더 걱정이다. 미세접합을 한 사람들은 꼼짝도 않고 조심해야 하는데, 아빠는 수술조차 하지 않았다. 내일 의사를 만나게 될텐데, 마음이 무겁다. 무거운 마음은 그것대로 무게를 가지고 있거나 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빠에게 읽어주려고 책을 가져왔지만, 급히 고른 책이라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내일은 내가 소리내어 읽으며 내 마음을 정리하고 돌봐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