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최근에 늘 그렇듯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식을 접했다. 신해철씨 별세.
유행가에 우리 어린 시절은 지배 받지 않았던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채웠던 노래는 “재즈카페”였다. 어디서 구했는 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 빨간 릭스틱.. “ 이렇게 가사를 구해서 달달 외웠다. 모르는 외국 단어가 너무 많았지만, 그래도 다 외우고 열심히 불렀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개그의 소재(무 한개 도~)로 종종 사용되곤 했던 무한궤도로 데뷔한 신해철은 잘 생기고 멋진 가수였다. 신해철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죽자 그에게 어떤 영향인지 설명하고 기억을 되새기는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으니 그는 행복한 사람인가 싶다.
내 세상에 생긴 작은 구멍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만 생각하고, 그만큼만 느낀다. 우리는 처참한 테러 현장을 보거나 듣고 서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끔찍하구나. 아, 가엾은 사람들 생각하게 된다. 미디어가 없다면, 옆 사람에게 전해듣고서라도 우리는 모자란 눈, 코, 입의 능력을 확장한다. 꼭 만져 보고 아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또 다른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런 생각을 위해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뜻하지 않게 어떤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을 읽다가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순간 생각이 하나 그 사람 몸과 마음에 머물게 된다. 신해철씨가 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결핍감을 느낀다. 쌓아놓은 블럭에서 블럭을 하나 뺀 것 같은 느낌. 쌓아둔 모레성의 한 켠에서 한줌 모래를 들어낸 느낌. 블럭이 부서지고, 모레성이 쓰러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잃은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신해철씨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누군가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어릴때부터 세상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몸소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셨던 부모님의 삶, 형제 자매의 삶, 친구들의 삶이 기억이라는 형태로, 아주 희미한 추억이라는 모양새로 내 삶 속에 있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누군가 사라지게 되면, 내 삶은 그만큼, 아니면 그 사라짐 보다 조금 더 결핍을 같게 되는 것 같다. 한바탕 울고 나도 채워지는 게 아니다.
성장이 멈춘 내 한 부분
사라진 사람의 기억이나 추억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그 사람의 기억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들만 자란다. 방송을 통해 간간히 보는 신해철씨를 보면서 나는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을 비교하고, 그의 인생에 내 인생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의 인생에 내 발을 한 쪽 담궈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신해철이 자리잡고 있던 그 부분, 그 기억은 성장을 멈춘다. 그게 아쉽다. 더 많은 영향을 내게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 그 사람들의 저 세상으로 불쑥 가버리면 갑자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든 학생 같다. 그가 보여준 삶이 그대로 질문이 되어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쉽게 ‘가치관’이란 것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가치관이라는 것은 편안히 누워 잠 잘 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갈등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다툼 속에서, 나의 이익이 눈 앞에 보일 때,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할 때, 누군가가 조언을 요청할 때, 그때 내 가치관은 소리 없이 내게 이야기를 전한다. “이렇게 해라.”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갖기 위해 드라마라를 보며, 신문을 읽으며, 책을 읽으며 내 생각으로 가상의 상황을 판단해보려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은 우리에게 훌륭한 가상의 상황이 된다. 내가 신해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물음을 우리는 자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신해철이 없으니, 신해철의 행동을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라고 물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날카로운 칼을 잃은 것이다. 우리의 물아귀같은 생각의 덩어리에서 뼈와 살을 발라낼 칼을 하나 잃은 것이다. 그게 슬프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죽은 자는 그간의 언행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도 죽으면 신해철을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한국의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뭘 했나?” 물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질문들 덕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그의 행동들 덕분에,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행동해야할 것이다.
네 살 아들에게, “죽음”을 설명할 때,
내 네 살 아들이 “죽음”에 대해 자주 질문을 하던 때가 있다. 그래서 난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죽음이라 했다. 아들은 나를 다시는 못 보게 되면 어떨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죽음이란 슬프거나, 안 좋은 것 이라고 결론 내린 듯 했다.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니 슬프다. 그래도 그는 하늘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벌써 민물장어가 되어 파도가 세차게 치는 바다에서 노닐 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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