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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신용카드 배송하면 얼마나 버나요?

며칠 전 모르는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070이라면 안 받았겠지만 휴대폰이라 받았다. 진주 오기 전에 살았던 창원의 한 아파트 이름을 대면서 집에 있느냐고 묻는다. ‘응?’ 휴대폰이 근처에 없어서 애플워치로 전화를 받아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더욱 듣기가 어려웠다. 옆에서 아이들은 떠들고. 그런데 들어보니 ‘나도 모르게’ 재발급된 신용카드를 배송하러 오신 분이었다. 나는 주소지가 바뀌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분은 내 새 주소를 받아쓰셨다. 

그리고 오늘 아들이 태권도를 마치고 올 시간 쯤에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또 동네형이랑 놀다 오려고 그러나 싶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얼마 전 들었던 그 목소리 같다. 8시 20분쯤 집으로 찾아올 텐데 사람이 있느냐고. 있으니 오시라고 했다. 둘째 재울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벨이 울린다. 신분증을 가지고 나가 기기에 서명을 하고 카드를 받았다. 나는 그분의 얼굴과 차림에 눈이 갔다. 그분은 창원 주소지에 갔다가 진주까지 오신 걸까? 아님 다른 분인가? 

젊게 보면 그 분 나이는 60대 후반, 하지만 70대 중반이라고 해도 충분해 보였다. 키는 크고 야위지도 않은 몸이었지만 주름이 깊고 선명했다. 머리에는 헬멧을 쓰고 있었고 아래 위로는 두툼한 방한복을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서명을 위한 단말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내려온 끈에는 열쇠가 하나 달려 있었다. 돌아서서 가시는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그게 집 열쇠인지 오토바이 열쇠인지는 정확히 보지 못했다. 내게 카드를 건네주고, 내 서명을 받기 무섭게 돌아서서 가셨다. 그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신용카드 배송에 대한 한 블로그 글 아래에 달린 댓글 

모두 잠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택배기사님도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시간, 신용카드를 들고 누군가에게 배달을 가는 분. 그 분은 하루에 몇 개의 카드를 배송하는 걸까? 돈은 어떻게 받는 걸까?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블로그 글에 따르면 하루 60에서 70개의 카드를 배달해도 한 달 200만 원을 받기는 힘든 것 같다. 정확한 배송 수당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카드사에 고용된' 인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의 거의 모든 물건을 배송하는 택배사도 택배 기사를 채용하는 구조가 아닌 것을 보면, '신용카드 배송'을 하려고 카드사가 인원을 채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블로그 글을 보니 '오토바이' 등 기동성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고 수익도 좋을 거라는데, 그럼 기름값은? 보험료는? 혹시나 배송중 사고가 나면 치료비는? 

가끔 편안히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노브랜드'에서 사온 캐슈너트이나 씹으며 따뜻한 방에서 넷플릭스나 쳐다보고 있을 때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모든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면, 자신의 인생에서만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데 있지 않을까. 공감을 '감성'의 문제로 생각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야 타인의 삶에 무관심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감은 '지'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적어도 산술적으로라도 알지 못하면', 공감은 어렵다. 공감하는 척하거나,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야 있겠지만. 

 

쓰지도 않을 카드를 받고서, 이 카드를 건내주러 온 분은 또 어디로 가나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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