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드윅 보스만은 그의 이름보다 ‘블랙팬서’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아들과 나에게는 오로지 블랙팬서로 기억되었다. 그가 암투병 중 작년에 사망하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를 유명하게 해 준 영화는 ‘42’였다. 켄 로빈슨이라는 흑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의 야구 인생을 다룬 영화다. 불평등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인생이 늘 그런 것처럼, 켄 로빈슨의 인생도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매일 욕을 먹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야구’를 굳이 ‘백인 선수들 틈에서’ 하기로 결심한 사람.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인데, 아들도 꼬드겼다. “블랙팬서가 찍은 영화 보자”
영화는 켄 로빈슨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그곳에는 차별 투성이다. 흑인을 놀리고 욕하는 사람들이 그게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행동이 왜 차별인지 생각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온 어린 소년은 아버지가 하는 “Go away, negro.”를 그대로 따라 한다. 같은 팀 선수들도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은 샤워실을 쓰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켄 로빈슨은 견딘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채드윅뿐만이 아니다. 살찌고 나이 든 해리슨 포드도 돋보인다. 나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바위산을 뛰어다니고, 총알을 피하고, 자동차에 올라타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그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다. 올해 78세라니 영화 42가 나왔을 때도 70대였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눈썹도 더 굵게, 코도 더 크게 분장을 해서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브렌치 리키(해리슨 포드)는 대학시절 자기 팀의 최고 포수였으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망가져 버린’ 친구를 돕지 못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흑인 선수도 차별받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자기가 힘을 써보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장에서” 불합리를 몰아내고 싶었다고.
영화를 보면서, 다행히 켄 로빈슨은 뛰어난 실력으로 다저스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만약 최초의 흑인 메이저 리거가 그저 그런 성적으로 내려앉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했다. 또 다른 흑인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발을 들여놓는 데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마치 켄 로빈슨을 도우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처럼, 로빈슨은 활약했다. 로빈슨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어도, 또 다른 흑인 선수가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야구를 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이런 성공담,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이야기를 보면,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이 있을 때에야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씁쓸하다. 사람들의 갈등을 조장해 자기 정치적 이익이나 챙기는 정치인들을 보면,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의 퇴보는 정말 쉽구나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중에 아들이 물었다. “아빠가 저 시대에 백인으로 태어났다면, 저런 차별 안 했겠지? 맞지?” 아들이 기다리던 대답과는 상관없이 나는 말했다. “글쎄.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지금 우리가 보기에 로빈슨이 착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은 나쁜 것 같지만, 저 시대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어. 나도 모르게 차별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동문서답 같은 내 대답에 아들은 전혀 만족 못했을 게 분명하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지 않기 의해서 로빈슨과 억지로 화해하고, 누군가는 보란 듯이 로빈슨과 어깨동무하고 팀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선수는 끝내 로빈슨을 외면하고, 어떤 선수는 로빈슨을 더 팀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그저 ‘게임에서 이기는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로빈슨은 나중에는 불평등에, 모욕에 도발당하지 않고 오히려 침착함으로 보여줌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될만한 영웅적 삶을 살게 된다. 제련을 견디고 강철이 되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로빈슨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채드윅은 그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그가 그렇게 연기를 잘해서 다시 한번 채드윅을 그리워하게 된다. 한두 편의 영화로 내가 그 배우에 대해서 무얼 알 수가 있겠나. 하지만,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Rest In Peace.
와칸다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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