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딸과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는 구몬 수학을 하며 시간을 좀 보내고, 간식을 꺼내 먹고, 점심에 뭘 만들어 먹을지 같이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이를 채 썰어서 꼬마김밥을 만들어 먹자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때 시간이 11시 30분이라 만들었다가는 점심때를 놓치기 딱 좋아서 갑자기 채칼만 주문해 놓고 로컬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사고, 백설 소갈비양념을 사고, 수프를 사고, 애들 과자를 샀다. 동네 꼬마김밥집에 들러서 참치 꼬마김밥이랑 그냥 꼬마김밥을 사왔다. 꼬마김밥 5줄이 1인분이라는데, 아들과 딸은 각자 3줄, 2줄씩을 먹고 배부르다며 상을 물렸다. 남는 음식은 다 내 몫이다.
오후에 심심하다는 딸을 데리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패드를 꺼내서 같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한테는 소방차를 그리라고 해서 그렇게 그렸다. 딸은 나비를 그리겠다고 했다. 이제 제법 procreate를 잘 쓴다. 팔레트에서 열심히 색을 골라가며 나비를 완성한다. 역시나 딸의 그림에는 형식이 없다. 그저 좋아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으로 채워가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비를 나비처럼 그려야지 라는 욕심이 적고, 예쁘게 그려야지라고만 생각해서 좋다. 누구라도 평가한다면, 그 평가를 의식한다면 그림이든 뭐든 재미있기는 참 어렵다. 초심자만 가질 수 있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영혼만이 무엇에나 즐거울 수가 있다. 뭐, 레벨업을 위해서는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에나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을 찾지 못한 사람이 끝까지 벽을 뚫고 나가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밥벌이가 되면 비루해지기 쉽다. 얼마 전 학교 내 거의 모든 교직원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학기말을 정리하면서 책을 나눠주며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간단히 들었다. 그분도 선물을 받았고, 그분에게 주어진 질문은, 가보지 못한 길, 포기한 기회가 무엇인가,였다. 그분은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되지 못했다. 그래도 군인이 되었다면 가족 가까이에서 지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하셨다. 질문은 이어졌다. 그럼 교직에서 보람을 느끼셨겠군요. 그분은 대답했다. 전혀요. 전혀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생활인일 뿐입니다.
나는 모든 교사가 교직에서 보람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처우가 나쁘더라도 교직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보람 운운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경력이 충분한 분들에게서 만큼은 되돌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 보람을 펼쳐 보여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선배 교사의 현재가 후배 교사의 미래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기대하며 생활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나는 조금 과장되었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나 보다.
딸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데, 나는 딸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반드시 남들의 평가에 의해서만 영향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밥벌이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 사람의 행복을 갉아먹게 되는 것 같다.
아무런 제약도 없는 것처럼, 자기 마음 껏 그림을 그리는 딸을 보면서 나는 왜 얼마 전 내가 들었던 '그냥 생활인으로서 학교에 온다'는 대답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딸의 미래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고, 내 미래에 대한 약간의 낙담이기도 하고 불안이기도 하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거나, 해야 한다면, 그는 분명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반드시 상품으로서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사회에 기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밥값으로만 계산될 수 없는 일에서 얻는 보람은 필수적이다. 보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우리는 내가 하는 일과 그 일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보람과 만족에 무관심 해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개인들이 그러하고, 사회가 그러하도록 방치한다. 나의 일과 내가 느끼는 보람 사이의 간격이 커져서 도저히 그 둘을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일과 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의 뚜렷한 관계를 찾기가 힘들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과거의 푸줏간 주인은 짐승을 잡고 고기를 발라 아는 사람에게 팔았을 것이다. 내가 손질한 고기를 누가 먹는지 알게 된다. 내 기여가 명확하다. 지금 우리의 노동도 그러한가?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의 일이 사회에 주는 영향을 체감하지 못하셨던 것일까? 그럼 나는 체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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