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 퐁낭 - 혼인지 - 해녀의집 - 섭지코지 - 성산일출 - 제주시/바이크루
어제 퐁낭에서 1시쯤 잠이 들었다. 퐁낭의 주인장님이 추천해주신 혼인지에 가보고 싶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밤새 창밖에서 비가 내리는 지 계속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아침 6시 30분쯤 눈을 떴다. 그리고 밖을 확인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다른 게스트 한분을 깨우고 다시 잠에 안 드셨는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이 깨어 있으셨다. 내가 일어난 걸 보고는 오늘 날씨가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낮동안엔 일단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밤에는 제주 전역에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고 했다. 흠. 그 얘길 듣고 오늘의 일정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승현이를 깨우려고 했는데, 승현이는 더 잠을 자길 바라고해서,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우비를 챙겨서 나갔다. 그리고 혼인지를 둘러봤다. 굴만 있는 곳인줄 알았는데, 작은 연못이었다. 요즘 흔히 공원에서 보이는 나무로 만든 데크가 만들어져있었다. 돌아와서 들으니 예전에는 그 나무데크도 없어서 약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헌데, 주인장님 말로는 그 스산함이 바로 혼인지의 본래 느낌이 아니었겠느냐 말씀하셨다. 그 나무길을 지나 가니 신방굴이 나왔다. 나는 보통 생각하는 지상위의 동굴을 생각했는데, 반지하 집을 내려가는 듯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일단 입구는 생선아귀 처럼 있었고, 그 아래로 돌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구멍이 세개 있나보다. 헌데, 너무 음침한 느낌이 들어서 계단 아래까지 완전히 내려가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제주라는 섬의 역사의 탄생과 관련된 곳 중 중요한 곳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그리고 환웅과 웅녀의 얘기처럼, 제주의 설화도 신과 인간의 결합, 그리고 그들이 하는 역할이 날씨와 농사 등과 관련이 있는 걸 확인하니 설화가 설화다움도 마음에 들었다.
[혼인지: 새벽이라 좀 스산한]
[신방굴은 더 스산;;]
그렇게 혼인지를 나서다가 돌담을 새로 쌓고 있는 아저씨들을 발견했다.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연세가 좀 많으셨지만.. 아무튼 카메라를 들고 근처로 가니, 어떻게 쌓았는지 궁금하던 돌담쌓는 법을 볼 수가 있었다. 아저씨들의 공구라는 망치 하나였다. 큰 수박덩이 두개만한 돌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려서 적당히 이에 맞춰서 쌓고, 모난 부분은 쌓기 전에 망치로 쳐내서 벽 모양을 다듬었다. 그리고 짚끈에 작은 돌을 매어서 가이드라인으로 사용했다. 아저씨들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데 비가 좀 흩뿌리기 시작해서 챙겨간 비옷을 입고 서둘러 돌아왔다. 반 팔티에 비옷을 입었더니 금방 팔에 땀이 차고, 비옷과 엉겨서 영 찝찝했다.
혼인지를 나와, 온평리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첫날 협재마레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부자의 목소리였다.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아들과 대화를 하며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아침으로 김치찌게가 먹고 싶다, 아들아 힘내라 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두 부자가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하고, 약간 못 미덥기도 했는 데, 이른 아침에 그렇게 열심히 자전거를 몰아가는 걸 보니 분명 성공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안전한 여행을 빌고 나는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서의 밤은 편안했다. 선풍기 하나 없이도 창문을 몇 개 열어두니 바람이 새벽에 자주자주 불어들어와서 방안을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친환경 상품과 선량한 책들이 편안함을 자아 냈다. 주인장님 얼굴에 그려진 웃음으로 만들어진 주름은 봄볕에 잘 마른 뽀송뽀송한 이불같은 포근함과 아늑함을 주었다. 주인장님의 미소를 담아보고 싶었는데, 일단 마음에만 담아왔다.
주인장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성산일출방면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해안도로를 약간 내려가서 해녀의 집'소라의 성'으로 가서 보말죽을 먹었다. 보말은 고디나 우렁이아 비슷해보였다. 그걸 죽으로 만들었는데, 담백하고 참 맛있었다. 죽속에 든 보말을 잘 씹으면 잣을 씹고 나는 향처럼 산뜻하고 독특한 향이 났다.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온 미역나물도 맛있었다.
부른배를 퉁퉁거리며 섭지코지로 향했다. 아직 일렀던 탓에 관광객들이 많지 않았다. 2005년에 왔을 때 없던 건물이 보여서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래도 섭지코지는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도 찍고 바람도 느끼고, 바다도 바라보다가 서둘러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꽤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10시쯤 되었던 것 같다.
[섭지코지 - 저기 저 말은 돈내면 탈 수 있다.]
[태종대 바람보다 시원하더라.]
[등대, 지도에 보니 여기도 일종의 '오름'이라고 되어 있다.]
다음코스는 성산일출봉이다. 삼방산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성산일출봉으로 갔는데, 더 유명한 곳이고, 더 많은 사람이 찾는 만큼 성산일출봉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높은 경사의 계단이 쉼없이 이어져 정상으로 닿아 있기는 했지만, 별로 힘들지 않고 금방 올라갔다. 올라가서 내려다보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섭지코지쪽 바다도 보이고, 성산쪽 마을 풍경도 너무나 멋있었고, 성산일출봉 그 풀들판도 너무나 멋있었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 속에서 사진도 찍고, 이번 여행 들어 두번째로 승현이와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또 우도를 향해 가야 해서 서둘러 내려왔다.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와보지 못했던 성산일출이라 너무 좋았고, 그 푸르름이 너무 멋졌다. 그 풀밭을 한번 들어가 뛰어 다녀보고 싶었다. 한 마리의 말이 되어 말이다.
[성산일출봉입구]
[독사진]
[독사진]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아서 바닷쪽으로 조금만 가면, 우도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크게 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오늘은 파도가 심해서 스쿠터는 승선이 안된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이라도 가야지 해서 왕복표를 발권했는데, 다시 나와서 생각해보니 우도를 걸어 다니면 세네시간은 걸릴 것 같아서 우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비가 언제 내리기 시작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걱정도 좀 됐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추스리며 표를 환불했다. 그리고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거문오름으로 가보자 해서 그길을 향했다. 성산에서 1132도로를 타고 좀 내려가서 97번 지방도를 타고 제주도를 향해가면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좁은 길로 가려고 하다가 좀 헤매서 시간을 좀 허비했다.
아무튼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들어서 달리는 데, 제주도 내륙으로 갈수록 양 옆에, 특히 오른편에 오름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해안도로만 다닐 때는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오름을 보니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오름인지 이름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 거문오름은 시간이 되면 꼭 올라가봐야지 생각하고 오토바이를 몰았다. 헌데,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서 있으면 많은 양이 아니지만, 스쿠터를 타고 앞으로 달리니 비가 꽤 많이 내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헌데, 갈수록 비가 더 온다. 성산민속마을 쯤에 도착했을 때는 네비게이션도 비가 안 맞도록 의자밑 공간에 넣어 버려야 했고, 잠시 점심을 해결하고 더 갈지를 고민해야 했다. 헌데, 하늘이 아무리 봐도 쉽게 풀릴 하늘이 아니라, 그냥 달리기로 결심. 쉬지 않고 달리는 데 빗발이 더 세어졌다. 비상깜빡이도 다 키고, 라이트도 키고 더욱 조심하면서 주행했다. 그리고 하늘은 구름으로 많이 어두워져 거문오름 가는 건 힘들것 같았다.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바이크루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쉬지 않고 달리기로 결심. 거문오름을 스쳐 지나가면서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직진. 제주로 진입하니 비는 계속 많이 온다. 길을 헷갈려서 빗속에서 지도를 계속 꺼내봤던 터라 지도는 다 젖어버렸다. 공항근처까지 와서도 이리저리 해매었다. 그리고 결국 찾아서 바이크를 잘 반납하고, 바이크루 사장님의 부모님이 운영하신다는 여관으로 왔다. 단돈 2만원. 바이크루 사장님이 말씀해주셔서 빗속에서 젖은 옷도 빨아서 말려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는 점심을 먹으러 출발. 물론 택시를 탔다. 동여중 근처에 있는 골막국수집 앞에 위치한 청해일횟집. 회가 1인분에 2만원이라 해서, 소자, 중자, 대자 선택해서 시키지 않고, 그냥 2인분을 시켰다. 반찬이 스무가지는 넘게 나온 것 같다. 그 중 맛있었던 소라회와 마지막에 나온 죽이었다. 여러가지 해물을 넣은 죽인데, 냄새는 정말 서양의 스프냄새가 났다. 맛도 너무 담백했고, 그 죽속에 들어가 있는 게속에도 살이 많아서 너무 맛있었다. 열심히 먹었는데도 다 먹지 못했으니 그 양이 3인분은 족히 되고도 남는 것 같다. 회를 먹으며 소주를 거의 한병씩 비운탓에 우리는 약간 취기가 돌아서 그냥 빗속을 우산을 쓴채 걷기로 했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면서 그냥 좀 걸었다. 그렇게 좀 걷다가 숙소로 택시타고 귀환. 그렇게 쉬었다. 자.. 이제 내일이면 제주를 떠난다.
오늘 아침 보말죽을 먹으며, 가을쯤 금토일 2박 3일로 와서, 올래길 좀 걷고 퐁랑에서 이틀밤 묵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승현이와 얘기했다. 꼭 그러고 싶다. 퐁랑의 주인장님 말씀에 따르면, 지금 정리된 제주 올래길이 15개이고, 한 올래길 코스당 보통 15에서 20킬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 코스 정도가 적당하다기 그렇다면 보름은 올래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이다. 휴. 하지만, 주인장님은 꼭 올래코스가 아니라도, 제주내륙을 걸으면 그냥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걷고 싶다. 제주에 와서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되어 참 기쁘다. 다음에 또 오리라. 올래길 하나만 걷더라도 짧게라도 오고 싶다. 저렴한 항공료에 감사. 왕복 10만원이면 되니 기쁠 따름. 퐁랑게스트 하우스에 감사를. 퐁랑게스트하우스에 갈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준 협재마레게스트하우스에 감사. 퐁랑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21살 서울 총각들에게도 감사. 협재마레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준 바이크루 사장님께도 감사. 함께 여행하며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승현이에게도 감사. 제주도여행을 결행한 스스로에게 칭찬.
이번 제주도여행 참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도가 늘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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