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95 문버드.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달에서 지구까지 오는 거리의 반정도까지를 날아온 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약 40만 킬로미터다. 그럼 문버드는 관측된 이례 60만 킬로미터 정도를 날았다는 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문버드가 20살 정도이니, 매년 3만 킬로미터를 날아야 가능하다.
문버드는 남미의 끝에서 북미의 끝까지 날아간다. 몇 군데 정거장에 내린 동안에는 배를 불려야 하고, 다른 붉은가슴도요처럼 날아다닌다면, 한 번에 최장 8000킬로미터를 6에서 8일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한다. 150그램 정도 되는 작은 새가 그런 비행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냈다. 문버드는 늙지 않았을까.
붉은가슴도요는 몸무게의 14배까지 먹을 수 있다. 몸무게 50킬로그램인 사람이 그렇게 하려면 300그램짜리 햄버거를 치즈와 토마토까지 2,300개나 먹어 치워야 한다.
이 책은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봤다. 거기서 문버드에 대해 듣고 문버드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책을 주문하면 대개 신간을 따로 모아서 책꽂이 꽂아둔다. 그렇게 신간이 쌓이면 신간이 신간이 아니게 될 때도 있다.(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에게 미안해한다.) 이 책은 다른 곳에 꽂아뒀다. 그리고 책 하나(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를 끝내고 조금 가볍게 읽을 책이 필요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돌렸더니 이 책이 있었다. 붙잡고 읽기 시작했고 재미있어서 놓지 못했다.
비행하는 동안 필요하지 않은 내장 기관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간과 장이 쪼그라 들고 다리 근육도 줄어든다... 그러니 B95가 연료를 보충하려고 중간에 멈췄을 때는 부드러운 먹이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한 마리 새의 여행기처럼 글을 쓰기도 하고, 그 새를 중심으로 연결된 과학자들의 연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읽기 쉬웠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일으키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줄여야 귀중한 생명들이 멸종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있다.
도요새의 비행 과정, 경로, 생의 일대기를 추적하다 보니 도요새의 생존과 관련된 또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투구게가 인상적이었다. 공룡보다 오래 살아온 동물인데, 그들은 엄청난 수의 알을 낳아서 도요새에게 영양가 있는 먹이를 공급한다. 그리고 각종 감염 여부를 판정하는 데 투구게의 혈액에서 추출한 물질이 사용된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많은 생명체에 우리 문명을 신세지고 있는가. 우리 생명체들은 얼마나 서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나.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작고, 전 지구와 연결 도리 때에야 비로소 더 큰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는 건 마치 전지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저물녘에는 불쪽 하늘의 별자리가 새들 뒤로 사라지고 저 앞 남쪽 하늘에서 새로운 성단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흘 밤낮을 애쓴 B95의 비행깃은 닳고 해어졌다. 날개 힘줄은 금방이라도 끓어질 지경이고, B95는 살소를 마시기 위해 헐떡거린다. 그러나 무리는 계속 전진하여 마침내 열대 위도에 진입한다. 그곳에서는 북동쪽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따뜻한 무역풍이 새들을 반기며 앞으로 밀어준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브라질 해안을 따라 흰 구름이 일직선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른 모습이 보인다. 뿌연 해안 사이로 갈색으로 느릿느릿 흐르는 위대한 아마존 강의 모습이 나타난다. 목적지를 눈앞에 둔 새들은 헐떡거리면서도 테이프를 끓으려고 전력 질주하는 주자처럼 속력을 높인다. 해변의 어부가 힐끗 올려다본 새들의 모습은 불과 나흘 전 캐나다 북부에서 먹이를 먹던 때보다 훨씬 야위었다. B95는 날개를 접어 착륙을 준비하고, 다시 한번 남아메리카 꼭대기의 두터운 갈색 진흙으로 활공해 안착한다.
어떤 징검돌(경유지가 되는 장소)은 붐볐고 쓰레기가 널렸고 먹이가 부족했지만, 어느 곳이든 B95가 다음 정거장까지 날아가는 데 필요한 단백질쯤은 공급할 수 있었다. 때로 하늘이 거칠었지만, 어떤 질풍이나 폭풍도 살아서 번식하려는 B95의 의지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B95는 거센 바람과 매서운 비를 뚫고 날았다. 어던 세균도 바이러스도 적저도 B95를 꺾지 못했다. 어떤 매도 B95를 낚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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