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자전거 친구

타츠루 2022. 3. 20. 21:54

자전거와 물수제비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아들한테 짜증이 는다. 아들이 나한테 짜증을 내서 그런가, 아님 내가 먼저 그러는 건가. 모르긴 몰라도, 일단 내가 아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지고 있고, 내 기준에서 모자란다 생각해서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내 잘못이 크다.

그래도 우리 둘이서만 할 수 있는 게 아직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다. 아내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으나 빠르게 멀리 갈 수가 없고, 딸을 매달고 타는 것도 가능하지만 빠르게 갈 수가 없다. 우리 둘이서 라면 조금 힘을 내어 달려볼 수가 있다. (물론, 오늘처럼 바람이 심한 날에는 그저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물 한 병을 넣고, 집에서 굴러 다니던 과자 두 개, 지갑을 챙겨서 나선다. 바람은 어찌 이렇게 부는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맞는 바람은 상쾌하다. 마치 어디선가 스위치가 켜지는 것처럼, 자전거에 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서부청사 뒤 이면도로 공사는 끝이 났고, 거기서부터 강변을 따라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새롭게 조성 중이다. 평거동에 있는 길처럼 넓은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합쳐진 모양이다. 아들은 그 길을 처음 달려 보는데, 포장이 잘 된 길이라 페달을 밟으면 그 힘이 모두 자전거를 미는데 쓰인다.

아들과 내 자전거, 제이미스 오로라와 트렉

오랜만에 힘을 내어 달리는데, 내가 더 신이 났나 보다. 아들이 좀 쉬었다 가자고 하는데, 다리 밑까지만 가자고 하고 더 끌고 왔다.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는데, 철퍽 소리가 들려 온다. 물만 보면 돌을 던지는데, 이제까지 아들이 강으로 바다로 던진 돌은 얼마나 될까. 물의 순환이 자연의 일이라면, 돌의 순환은 아들이 일임에 분명하다.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돌을 던지는 아들을 바라본다. 내 가장 친한 자전거 친구. 우리가 함께 달린 시간은 얼마나 될까. 분명 오랜 시간이다. 킥보드를 타면서부터 우리 둘은 제법 많이 붙어 다녔다. 둘이서 가장 멀리 달린 거리는 60킬로 정도인데, 그 거리는 내가 달린 거리 중에서도 꽤 먼 거리다. 아들은 그 기록을 깨고 싶다 생각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깨 봐야지.

내 자전거 친구

적당히 쉬었는데도, 내 가장 친한 자전거 친구는 돌을 던지고 바위를 탐험하느라 여념이 없다.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서, 그저 마음 쏟고 싶은 일에 마음을 쏟는 일은 휴식이 된다. 아들 덕분에 끌려 나오듯 자전거를 타러 나왔지만 나도 기분이 좋다. 느긋한 마음이 되어,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조촐하게 간식

처음에는 영 적응이 되지 않던 드롭바도, 바엔드 쉬프터도, 안장도 이제 모두 적응했다. 브롬톤보다 편해서 집 근처에서 장 보러 가거나 통닭 찾으러 가는 때를 빼고는 투어링 자전거를 타고 나온다. (바테이프 색깔을 바꾸고, 타이어도 좀 바꾸면 더 이쁘겠는데...)

볕 좋은 곳에 평상

또 조금 달리는데, 평상이 나왔다. 여기 이 상평교 아래에 평상은 두고 찾는 사람은 누구일까. 때마침 햇볕까지 따뜻해서 다시 앉아서 과자를 또 뜯는다. "다음에 아침 일찍 나와서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라면도 먹으면 좋겠다, 아들" "응, 그런데, 그러려면 언제 일어나야 하지?" 아들과 다음 주 자전거 여행을 약속한다. 가방에 라면 끓여 먹을 준비를 하고, 채 해가 뜨기 전에 나서서 라면을 먹으면 아주 꿀맛이지 싶다. 아마도 딸은 따라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겠지? 콧물만 나오지 않는다면 딸도 데리고 나오면 좋겠지.

내 가장 친한 자전거 친구

"서점에 가면 안돼?"
이 녀석의 전략은 일단 자전거를 타고 나와서 충무공동으로 가서 진주문고 혁신점에서 자기가 사고 싶은 책을 사는 거였나 보다. 5시에 피자를 시켜둬서 시간 맞춰 가야 한다고 하니 아쉬워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책은 어제도 사줬잖아.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아들은 내 뒤에 꼭 붙어서 바람을 피한다. 이제는 제법 자전거 타는 폼도 자연스럽다. 곧 자전거를 바꿔줘야 하려나? 나 없이도 멀리 다닐 수 있게 자라면 자랑스럽겠지만, 벌써부터 조금 슬프다. 우리 언제까지 가장 좋은 자전거 친구가 되려나. 곧 자전거 타려면 아들이 아니라, 내가 부탁해야 하는 때가 오려나?

잘 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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