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고립되어 있다. 이건 참으로 바뀌지 않는 사실인 것 같다. 같은 과목을 여러 교사가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교사는 혼자서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일단 나뿐이다. 학교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니 분명 교사 간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외부에서 일으키기도 힘들겠지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교실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나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도 제법생겼다. 우리 학교 중앙 현관에는 교직원 신발장이 있다. 나이순으로 신발장이 배치되어 있다. 물론 교장선생님은 나이에 상관없이 1번이겠지. 그러고 보니 늘 내 신발장 주변만 살폈지 누가 제일 먼저고 누가 제일 나중인지는 보지 않았구나. (내일은 출근하면서 1번 자리는 누구인가 봐야겠다.) 아무튼 같은 학교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 신발은 조금씩 위치를 옮겼다. 한 줄 정도 위로 올라갔으니, '상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어리고 경력이 적을 때는 별로 걱정할 게 없었다. 하라고 하는 일을 잘 하면 되고, 교실에서 학생들과 잘 지내면 그만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한데, 이제 나보다 더 경력이 적은 선생님들을 만나니, 마음의 부담이 생긴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본이 되어야겠다는 부담이다. 수업 시수를 나누거나, 업무를 분장할 때에도 더 경력이 적은 선생님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지 마음으로 자꾸 생각한다.
나는 교직이 직업으로 갖는 가장 큰 장점은 '교사는 모두 교사다'라는 점이다. 교사 사이에는 위계가 없다. 물론 업무상 '부장'과 그 '계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장'이 '승진'인 것은 아니다. 그저 맡은 직무가 '부장'일 뿐이다. 부장이 반드시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업무를 조정하고 지시하고, 실제로 해나가는 데 있어서 편하려면 부장이 연배가 높고 경력이 더 많으면 편하긴 하겠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 교사 간에는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우리는 '동등한 교사'로서 서로를 존중한다.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나는 더 경력이 적은 선생님에게 더 조심하여 대한다. 아직 모자란 사람이라, 나보다 더 젊고 더 경력이 적은 사람을 나도 모르게 하대할까봐서 그렇다. 짧은 대화에서라도 '선생님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선생님이 아직 젊어서 그런가 본데.', '선생님이 아직 경험이 부족한가 본데.'라는 말을 할까 봐 미리 조심히 말한다. 나는 이미 저런 말들을 들어봤고, 저런 말이 어떠한 충고나 조언이나 나를 위하는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혹 말실수를 하면 어떨까?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경력이 적어서, 자신의 그 마음상한 바를 내게 말 못 할까 봐 걱정이 된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재단하고 지시하는 게 꼰대 아닌가. 이는 꼰대 이전에 비인간에 가깝다. 나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은 분이 나를 막대하면, 나는 이야기하면 된다. 나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은 분에게 내가 실수하면, 그분은 내게 말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적은 사람이 겪는 고충은 더 나이 많고 경력 많은 사람이 직접 전해 듣기가 어렵다. 그러니 그분들의 입장을 더 깊이 헤아리고, 매사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그냥 더 경력 많은 분들과 이야기할 때가 나는 더 편하다. 농담도 좀 더 쉬이 하고.
사람 간의 대화에서 서로 편하게 생각하는 그 '선'이라는 건 애매하고 모호하다. 어떤 사람의 어떤 농담은 나를 마음 아프게, 다치게도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때에는 상대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모호해서 상처가 되는 순간을 그다음부터는 피할 수가 있다. 내가 말함으로써 상대는 내가 허용하는 '한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모르고 그랬다' 따위의 변명은 하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내가 지키는 '선'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걸 보통 우리는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꼭같은 상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만의 sense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조정의 과정을 거쳐 common sense(상식)의 합의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관계를 지키면서, 스스로도 지키려면, 내 '선'이 무엇인지 우리의 상식은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받은 상처에 대해 상대에게 자못 침착한 태도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연습을 별로 해오지 못했다. 대개 어리고 젊은 사람은 자신의 기분에 대해서 존중받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고 내 마음 속에서 오해를 쌓고 관계를 정리하기보다는, 조금 어색해도 말을 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상대의 협조를 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내일 선생님 한 분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잘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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