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이끌고 군산으로 인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근대역사박물관부터 시작했는데, 어릴 때 기억하는 진해 같기도 했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경주의 한쪽 골목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진주에서 차로 3시간(마이산 휴게소에서 15분) 정도 걸려 갔는데, 운전을 하지 않으니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다른 사람이 실어다 주는 여행은 훨씬 편하다.
경동 기차 마을은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기차길이 있는 고즈넉한 풍경 따위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진으로는 -남기고 싶지 않아서- 남기지 않았으나, 옛날 교복, 각종 간식, 각종 기념품으로 가득했다. 내가 입어본 적 없는 교복으로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는 없다. 결국 옛날 느낌 나는 사진을 찍는 게 좋은 사람은 가도 되는 곳. 쫀득이를 연탄불에 구워 먹거나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차마을이라기보다는 기찻길가게라고 해야 맞다. 그래도 딸은 뽑기도 하고 유행한다는 젤리도 샀다. 결국 내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기찻길은 있지만 관광지는 아니라 사람이 없는 기찻길. 거기에 무인서점이자 독립서점이 하나 있다.
우연히 동네서점 포털(https://www.bookshopmap.com/ ) 사이트에서 보게 되었다. 어느 도시를 가던 그 도시에 작은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면 가봐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어도, '굳이 책방'을 하는 이유가 숨어 있을 테니. 혼자 그 이야기를 상상해도 된다. 한강 작가가 말하지 않았나. 적자가 나더라도 동네 책방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책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마음속에 한 번은 '나도 책방을 하고 싶다'(나 같은 사람)는 사람이라면 철길마을의 번화함을 벗어나서 이곳에 들르지 않을까.
서점 주인이 꾸려 놓은 매대를 살펴본다. 책도 있고, 문구도 있고, 중고책도 있다. 군산에 대한 책도 있고, 여성이 쓴 책도 있다. 아마도 주인장은 여자분이겠다.
요즘 풀귀라는 한강 작가님의 책도 있었다! 띠지를 보아하니, 작은 책방에도 일부 납품이 된 모양이다.
'술책' 모임도 하는 걸까. 버젓이 놓여 있는 걸 보면 이유가 있을텐데. 이 책방에서 모임도 진행하는 걸까. 블로그로 찾아봤을 때는 독립출판물 저자를 초청해 특강도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쓰지 못한 책' 혹은 '내가 쓰고 싶은 책' 혹은 '내가 쓴다면 나의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 등등을 생각했다.
책방은 내가 보기엔 아주 균형잡혀 있었다. 청소하기는 힘들겠지만, 제품이든 소품이든 모두 어울렸다. 나라면, 이렇게 열어두고 '무인서점'으로 운영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주인장은 사자의 가슴을 가진 용감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군산 기행은 그런대로 좋았지만, 그중 서점이 제일 좋았다. 너무 짧은 시간 있었지만, 어쩌겠나. 혼자 다시 찾는다면 더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더 많은 책을 골라야지.
나오기 전 나는 2주에 한번 금요일마다 모여 글을 읽고 합평을 했다는 '글요일'(나도 동명의 모임을 운영했다) 여성들이 쓴 글을 묶은 책을 사서 왔다. 입금은 계좌이체로. 입금자명만 남는다면, 주인장은 어떤 책이 팔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감하러 가게에 오면 줄어든 책들의 부피감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는 걸까? 입금자명이 아니라, 책 제목을 썼어야 했다.
"책방에 모여 글쓰기를 시작했다."(정지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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