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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영어교사의 초등아들 영어 고민

타츠루 2021. 1. 30. 16:30

 

 

아이에게 어떻게 영어를 가르쳐야 할까요? 사실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공부한 부분은 사춘기를 지난 학습자들에 대한 교육방법이나 과거의 연구들이었습니다. 사범대학교 영어교육과에서 배우는 것이죠. 저는 국민학교(흑흑)까지는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보습학원에서 선생님이 예비중학생들을 모아 놓고 알파벳도 가르치고, Zoo, Zebra 를 따라 읽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모든 영어공부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영어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영어라는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말의 명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이름이 영어와 한글로 자막으로 나왔었고, 저는 ‘내 힘으로 저 영어이름을 읽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매우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영어공부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문법은 어렵고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도(반복해서 듣게 될 수 밖에 없지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먹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듣고, 문제를 풀고, 문장을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는 것들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어법을 묻는 문제는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영어성적은 아쉽지 않게 나왔습니다. 배워서 시험을 치는데 적합한 능력을 운좋게 가지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중학교 3학년인데도, 알파벳을 아직 다 못 읽는 학생을 봤습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 알파벳은 알지만 중학교 수준의 단어만 알고 이후로는 성장이 없는 학생들도 많이 봅니다. 계속해서 영어를 보거나 영어학원에 다니는 데도 답보 상태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영재원에서 초등6학년부터 중학생까지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는데, 그 학생들의 경우 영재원 선발시험부터가 토플 수준이었습니다. 그걸 모두 맞히고 들어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영어를 언어로 보든, 성적을 받기 위한 교과목으로 보든 그 관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습자가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어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공부의 방향이 성공적이라면, 그 사람은 혼자서 더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일테니까요.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추는 게,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세상이 달라졌고 제가 영어를 배우던 시기보다 영어는 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빨리 영어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를 준비하기 위해, 그보다 이전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영어를 읽고 쓰는’ 방식이 아니고 ‘노는’ 것처럼 배운다 하더라도 어쨌든 아이들은 영어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잘한다’, ‘아니다’ 서로를 평가하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우리 애가 영어 못해서 자신감 떨어질까봐’ 또 영어를 더 시키기도 할 겁니다. (그럼 결국 잘하게 되고, 자신감도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저는 영어공부의 성공은 학습자가 가장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하려는 시기(저는 고등학생부터대학생 시기라고 봅니다)에 열렬히 영어를 공부할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로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미 수준에서의 영어는 이제 번역기가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번역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인간의 정교한 사고’가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니 결국 ‘영어로 고심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영어학습자가 될 겁니다.

 

영어교육에서 유일하게 일치하는 견해는 ‘사람마다 언어를 마스터 하는 과정이 다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 영어를 배웠을 때 두드러지는 이점은 ‘발음’ 수준이라는 겁니다. 어쨌든 빨리 배우면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라는 연구 결과는 없습니다. 엄마표 영어, 아빠표 영어가 결국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서’로 끝난다면, 그 영어교육은 대학교 입학과 함께 끝납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누구라도 영어를 학습하는 과정 자체에 참여할 수 있는 마음인 상태라면 좋겠습니다. 제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재원에서 봤던 ‘영어 구사능력’은 뛰어나지만, 영어공부를 너무나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두려움이나 불안감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저런 학생들이 더 많아진다면, 학교 수업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요리영재라는 평가를 받는데, 사실 ‘요리하는 걸 싫어’한다면? 영재의 기한이 다되고 나면 그저 ‘영어를 싫어하는 평범한 어른’이 될 겁니다. 어떤 지도나 교육 혹은 훈육에 의해서든 일단 영어를 굉장히 잘 읽고 말하는 수준이 되었는데, 영어를 싫어한다면? 고삐에서 풀리는 순간 자발적인 학습은 어렵다고 봅니다. 자발적인 성장이 어려운 것이죠.

 

저는 사람의 능력이란 생각하고 실천하는 힘에 있다고 봅니다. 잘 생각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은 시간인데, 영어를 공부하는 데 어린 시절의 일부를 쓴다는 것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혹은 아무 것도 안할 수 있는 시간을 영어에 쏟는 다는 말입니다. ‘해야 할 것 없이 멍때릴 수 있는’ 시기는 아동기 뿐입니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아이들은 사실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게 아니죠. 전문가들이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노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텅빈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그 틈을 사회는 비워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삶을 채워야 할 대상으로 본다면, 결국 아이는 어른들이 채워준 것으로 가득한 허수아비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영어를 잘하게되면 영어로 된 자료도 볼 수 있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네, 그건 맞습니다. 적어도 ‘다양한 자료를 보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영어자료를 찾아보는 이유는 ‘영어를 잘해서 그냥 아무거나 집어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고 싶은 마음’이 먼저 일어나서 가능한 겁니다. 그런 마음만 강하다면, 번역기를 돌려서 봐도 되고 좋은 번역서를 더 깊이 이해해도 됩니다. 외국어를 하지 못해서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라면, 다른 사람이 이미 공부해두지 않은 분야를 공부할 때일겁니다. 누구도 우리말로 옮겨두지 않은 것을 공부하는 사람. 그때 그 사람은 배워야 하는 외국어를 누구보다 열심히 배울 겁니다. 그리고 빠르게 습득할 겁니다. 선후를 바꾸어 생각하면 안됩니다. 영어를 잘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영어까지 더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학문의 첨단을 공부하기 전이라면 우선 모국어로 된 자료를 공부해도 충분합니다. (외국어 그 자체에 대한 공부는 별게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생각은 형태가 없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려면 결국 언어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생각을 더 정렬하려면 더 정밀한 도구가 필요한 것이고, 그때 그 도구는 분명 모국어가 될 겁니다.

 

결국 제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분은 ‘더 일찍 더 많이 가르치려다가 더 일찍 더 빨리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학습자’를 만들어 내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수포자는 흔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학교에는 ‘영포자’라는 말도 제법 쓰입니다. 하느라 했는 데,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가 안 나와서 포기하는 게 만약에 ‘포자’라면, 그리고 제법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포기할래’라고 말한다면, 영어교육 전체에 대해 되짚어 봐야 하는 때가 아닐까요?

 

어쨌거나 ‘우리 애는 어떻게든 영어 잘하게 만들어 나처럼 설움 당하는 일이 없게 만들겠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얼마나 시키든 성적으로 줄을 세우면, 누군가는 일등을 누군가를 꼴찌를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부모가 돈이 없어 학원도 안 보내주고, 지금 아이들이 하는 회화식 수업이 아니라서 내가 영어를 못 한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는 더 해주기만 하면 나보다 더 잘 하게 될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내 아이의 관심과 적성을 살펴가며 선택권을 주고 대화해가며 가르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선이 어디인지는 아이와 부모만 알겁니다. 저는 초등4학년이 되는 아들과 간신히 파닉스를 끝내가며, 이제는 무얼 해볼까 고민합니다. 오늘 고민의 시작은 ‘아들이랑 좀 재미있게, 별 부담 안되면서 공부할 방법이 없을까? 아들을 끌고 가지 않고 맞춰주는 방법이 없을까?’였습니다. 지금 재미없게 영어를 공부하느니, 차라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선입견없이’ 배우기를 원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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