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제일 좋아한 책은 모두 학습만화책이다. 마법천자문,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살아남기 시리즈, 터닝메카드(이건 학습만화는 아니지만), 태극천자문. 마법천자문은 며칠 전에 50권이 나왔다. 처음에는 한자 카드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특히 터닝메카드 책을 읽을 때는 늘 '배틀'을 하자는 아들 성화에 힘들었다. ('배틀'만은 정말 재미가 없어서 같이 해줄 수가 없었다. 재미없기는 '한자배틀'도 마찬가지였구나.)
아들은 제법 일찍 혼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한 권의 책을 여러번 읽어주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같은 그림책을 제법 반복해서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아들은 좋아하는 책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웠다. 그렇게 통으로 글자를 외우다가 어느날 차창밖으로 보이는 '약국'이라는 단어를 자기 힘으로 읽었다.
아들이 혼자 글을 읽을 수가 있다고 해서 아내와 나의 낭독이 멈춘 것은 아니다. 1학년이 되었을 때는 갑자기 쓰는 양이 늘고, 다양한 글도 접하게 되어서 더욱 아들에게 많은 책을 읽어주려고 애썼다. 2학년 때에도 아내는 아들이 잠들기 전 따로 불러서 그림책 몇 권을 읽어줬다. 나는 아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책을 선택해서 잠자리에서 읽어주기도 했다. 4살 어린 딸도 봐줘야 하니,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1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혼자 자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들과 보내는 같이 잠들지 않는 만큼 아들과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보다 아들은 책을 더 좋아했으면 좋겠다. 결국 만화에서든 학습만화에서든 줄글로 넘어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혼자 힘으로 한 권의 책을 읽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화와는 달리 '이야기'만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나서 혼자 읽어 나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독서가로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아무튼 자녀 독서 지도와 관련해서 빠지지 않는 조언이 "아이가 혼자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낭독을 멈추지는 말라." 는 것이었다. 이는 외국어 교육과 관련한 내용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꾸준히 좋은 책을 낭독해 주라는 것. 나는 나도 재미있고 아들도 재미있을 만한 책을 골라서 낭독을 계속했다.
시리즈물을 골라라.
독서 지도에서 해주는 또 다른 조언이 '시리즈물'로 긴 글에 적응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시리즈물의 경우, 일단 1권을 통해서 등장인물에 대해 익히게 되면, 2권, 3권에서 에너지가 덜 들고, 플롯의 진행에 대한 감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까 단편 소설 10권을 읽는 것보다, 10권짜리 장편을 읽는 게 '새로운 정보'라는 차원에서는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의 책은 '어렵게' 쓰여지지 않으니까 시리즈물을 읽어서 아이는 변해가는 캐릭터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반복되는 사건과 해결 구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책의 내용을 '기대'하고 '예상'하고, 자기가 기대하고 예상한 것과 실제로 책에서 재현되는 내용을 비교해보는 재미를 준다.
지팡이로 꼬득임
어떤 시리즈물이 좋을까 계속 고민하면서 서점에 가면 아이들 책을 유심히 봤다. 그리고 아들에게 재미있어 보이는 지 묻기도 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아들은 '글로만 된 책'을 읽을 준비가 안 되었다. "글만 있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아."가 아들의 말이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글로만 된 게 재미가 있어?"라고 묻는 아들이었으니까.
그런 아들과 작년에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영화는 무척 재미가 없었다. 영화를 다 보고 엠비씨네 지하에 있는 진주문고로 갔다. 아들은 또 학습만화책을 고르러 갔고, 나는 아들이 흥미를 보일만한 책이 있는 지 살펴봤다. 그리고 발견한 이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발견! 하지만 나는 이런 걸 사면 안된다. 어른도 아이도 갖고 싶다는 이유로 물건을 구입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라도 어른이 더 욕을 먹는다. 아들을 불렀다. 짜잔, '해리포터 지팡이 컬렉션' 아들은 '마법 지팡이'라는 내 소개에 이미 마을을 잃었다. 내 조건은 하나, "해리포터 책을 읽는다고 약속하면 이거 사줄께." 아들은 당연히(?) 읽겠다고 했다.
저 카탈로그를 들고 아들은 해리포터 영화도 책도 본 적이 없으면서 캐릭터들의 얼굴을 익혔다. 물론, '누구의 지팡이가 멋있느냐'가 주된 관심사였지만. 그때 사준 '해리포터 1권'은 꽤 오래 아들 방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아들에게 '80일간의 세계일주', '지킬박사와 하이드', '날개달린 고양이'를 밤에 읽어줬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권'을 사달라고 했다. 그 책을 사줬고, 다 읽고 이제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다 읽었다. 영화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까지 봤다.
오늘 온 가족이 앉아서(딸은 해리포터가 무서워서 혼자서 '브레드 이발소'를 봤다) '불의 잔'을 보는 데, 나는 언젠가 본 기억은 있지만 제대로 내용을 생각해 낼 수는 없었다. 너무나 빨리 자라버린 주인공들을 보면서, 영화와 함께 자란 출연진들의 삶에 대해 문뜩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들에게 코로나가 끝나면, 영국이든 일본에는 해리포터 테마파크로 가보자고 했고, 아들은 새로운 마법 지팡이를 살 생각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아들이 자는 중에 들려주려고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다운 받았다. 이제 아들이 더 좋은 책을 혼자 찾아서 읽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미 아들은 내 책꽂이 꽂혀 있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것 같은 책들은 몰래 자기 방으로 옮기고 있다. 내 책들을 빌리고 읽고 자기의 책들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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