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또 누운채로 유튜브를 더 보다가 12시를 넘겨서 잠이 들었다.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이다…라고 해도 8시에 일어나버렸다. 아내는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도 깨우지는 않는다. 물론 일어나면 일을 해야 하긴 한다. 오늘은 특별히 놀러 다녀온 곳도 없다. 아이들은 왠일인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날이 추워서 일까 나도 별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해서 별 일 없이 지나간 하루를 기록해둔다.
아들과 딸은 9시 30분에 각자의 영상을 시청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한다. 아들은 구몬수학을 해야 하고, 생각수학 문제도 풀어야 한다. 대개 문제를 풀다가 틀리거나 엄마한테 모르는 걸 물어본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다가 쉽게 기분 나빠하거나 지쳐한다. 아내는 어쨌든 아들을 잘 달래는 편이고, 아들은 9시 30분 동물농장을 보기 위해서 참고 해야 할 일을 한다. 딸도 구몬을 한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읽고, 받아쓰기까지 해야 자기고 보고 싶은 영상을 볼 수 있다. 딸은 유튜브로 버섯도리(유튜브 채널로, 한 가족이 만들어 가는 상황극이 주를 이룬다.) 보는 걸 제일 좋아한다. 나는 수업 준비할 게 있어서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사이에 나는 수업 준비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다들 놀고 있는데 나만 일이 될 리가 없다. 아들과 같이 동물농장을 보는 데, 사육 곰의 이야기가 나왔다. 본래 정부의 허가를 받아 식용으로 키워지기 시작했다가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려서 뜬장에서 사료나 물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곰들의 이야기였다. 자해를 하고, 극심한 정형행동을 보이는 등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참혹해서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환경부에서는 2025년에 사육곰들을 위해서 생츄어리(인간의 손을 타서 자연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서 사육장 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사육되고 있는 곰이 300마리가 넘는다는데, 어디에서든 그 곰들을 모두 수용이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아무데도 가고 싶어하지 않을 줄 모르고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물색해 본다. 갑자기 추워졌다고 해도 가을은 가을이다. 가을하면 송광사아닌가. 가까운 곳에 절도 있고, 그냥 걸을 산도 있지만, 송광사 길이 참 좋다. 오늘은 알아보니 무소유길이라는 게 있더라. 아마 오가면서 그 길을 보기는 했을텐데, 그런 코스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송광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야생차 체험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순천시에서 운영하고 3000원만 내면 다례체험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리로 가면 되겠다 생각했다.
12시 되어 아내는 얼른 점심을 차렸고,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이제 밖으로 나서자 하는데, 딸이 “그냥 집에 있고 싶어.” 한다. “아빠는 너희 안 나갈거면 혼자 학교가서 일해야해.” 라고 위협(?)을 하는데도 딸도 아들도 밖에 가기 싫단다. 그래서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혼자서 학교에 갈 필요도 없고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나는 침대에 앉아 수업을 준비한다. 침대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니 엉덩이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꼬득이기로 했다.
아들은 독서활동을 기록하는 사이트에 가서, 소설을 쓴다. 학생들이 독서사항을 기록하고, 자신의 글도 올릴 수 있는데, 소설을 쓰면 책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정확히 어떻게 진행하는 지 관심있게 보지 않았지만, 아들은 아무튼 오늘 하루 동안 4편의 글을 올렸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해리포터를 출연시켜서, 진주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썼다. 나중에 읽어보니 제법 재미가 있다. 소설을 읽어봐서 그런가 상황에 대한 묘사도 있고, 우리 가족이 함께 가서 좋았던 곳들을 꼬박꼬박 글에 살려 썼다.
딸은 엄마와 앉아서 보드게임을 한다. 다빈치 코드를 배우는데, 몇 번 하더니 더 이상 하지는 않더라. 나는 보드게임을 열심히 하지 않는데, 우리 집에는 보드게임이 서른 개는 넘게 있다. 그 중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한 네 다섯가지 정도? 아내가 좋아하고, 아들은 거의 다 할 줄 안다. 나는 보드게임까지 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아들과 한자배틀(마법천자문 책을 펴고, 공격에 사용되는 한자가 잘 보이도록 하고, 한자를 써가며 서로 가상의 공격을 하는 놀이다. 아들이 1학년, 2학년 때는 한자배틀 놀이를 너무나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참으로 싫어했다.)을 5분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딸과 아들을 데리고 문구점에도 가고 하나로 마트에도 가기로 했다. 낮기온은 14도 정도라 겨울 외투까지 입을 필요는 없었지만, 나가보니 바람이 정말 차가웠다. 딸은 원래 문구점에 가서 콜라맛 슬러쉬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바람이 차가워서 다른 간식을 골랐다. 아들은 슬라임을 골랐다. 하나로 마트로 가서는 쌈채소, 오이고추, 귤, 부침두부, 초코파이를 샀다. 저녁메뉴가 삼겹살이었다.
우리가족은 5시에 저녁을 준비한다. 나는 삼겹살을 구웠고, 아내는 채소를 씻고 밥을 준비했다. 아들, 딸 모두 매운 것은 좋아하지 않고 김치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딸은 어쩐 일인지, 나를 따라 쌈을 싸고 쌈장을 넣어 먹는다. 오이고추 중 부드러운 녀석을 골라서 앞부분을 떼어주니, 젓가락으로 쌈장을 찍어 고추 안에 숨기듯 발라서 잘 먹는다. 저녁까지 먹고 나면 이제 씻는 일만 남았다. 나는 아이들이 씻는 사이에, 수업 영상을 촬영한다. 이제는 아이패드로 수업 영상 만드는 게 아주 익숙하고 몸에 익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간식 시간. 귤도 먹고 초코파이도 먹고 음료수도 꺼내 먹는다. 딸은 갑자기 종이접기로 팝잇 만들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거실 티비에 유튜브 영상을 띄우고 배우며 접기 시작한다. 나도 붙어서 도와주고, 아들도 보더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끼어들고, 결국 아내도 거들기 시작한다. 집념의 우리 딸은 거의 한 시간을 앉아서 12개 넘는 종이를 접고 붙여서 제법 팝잇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냈다.
이후로는 양치질하고, 책 읽고, 등등 잠 잘 준비다. 나는 오늘 분량의 글을 쓰지 못해서 무얼 쓸까 고심했다. 그러다가 딸이 자기 방의 이부자리며 장난감을 정리해둔 것을 보고, 그저 매일 똑같은 것 같은 하루를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누구도 우리의 아주 자잘한 일상에는 관심이 없는데,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나중에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해도 기억하기 힘든 날은 오늘같이 별 일 없는 날이다. 별 일 없던 날, 별거 아닌 사진이 마음을 더 찌릿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런 날, 그런 순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서 더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가장 보통의 날이 가장 잊혀지기 쉬운 날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중 잊혀져도 될 만한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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