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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앨리스’로 가기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타츠루 2021. 7. 19. 21:1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드디어 읽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2시간에서 3시간이면 읽어낼 양이었다. 영어로 읽을 때는 자꾸 실패했는데, 내가 저자 루이스 캐럴의 언어유희를 알아들을 만큼 충분한 영어실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이유는, 그 다음 작품인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기 위해서였다. 최근 읽은 책에서나 다른 책에서도 저자들이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인용하거나 언급한 적이 여러번이라 무슨 책일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지 않고 거울나라의 앨리스로 넘어갈 수는 없다. 어릴 때 만화로나 본 적은 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제 읽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늘 이렇게 이제는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 나타난다. 아니, ‘늘’이라고 하면 거짓이겠다. 책을 1년에 40권 정도는 읽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혼자서는 읽을 힘이 나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는 앨리스의 이야기다. 말장난을 일삼는 여왕, 토끼, 카드 등등을 만나며 앨리스는 돌아다닌다. 마지막에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언니가 앨리스가 다녀온 세상을 다시 꿈꾼다. 아무래도 앨리스의 이야기를 내가 모두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비유와, 이상한 나라의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내가 여기서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려줄 수 있겠니?”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 가에 달려 있지.”


어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길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심심해 죽을 것 같이 따분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앨리스가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거주자들은 규칙 따위는 우습게 알고, 엄숙함이나 진지함은 오로지 ‘과장’하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물론 처음에는 비틀기(reeling)와 몸부림치기(writhing)부터 배우지.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산수를 배워. 야망(ambition), 오락(distraction), 추함(uglification), 조롱(derision)따위를 말이야.”


학교에서 배우는 갖가지 ‘기능’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이제 한글로 읽었으니, 영어로 읽어도 잘 될 것 같다. 마치 아재농담 같은 말장난이지만, 거기서 무언가 더 찾아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거울나라의 앨리스’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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