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모임

3월 먼북소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타츠루 2025. 3. 22. 21:45

 

일시: 2025.3.21. 금 19:00~

장소: 카페 백송

반 만 읽고 만나자고 했고 모두들 반만 읽고 왔다. 반만 읽어서는 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총평을 하고 밑줄 긋고 메모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오늘 처음 온 ** 아빠는 처음 자리했음에도 대화에 잘 스며들었다. 분명히 뚜렷한 회원이 되어 줄 것 같아서 첫 모임부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독일인을 세뇌시켰다랄까 그들이 유대인을 절멸하기 위한 계획에 동참하도록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번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정의랄까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책에 이르게 되었다.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던질 질문도 없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저럴 수가 있을까.

노예를 팔아넘긴 아프리카 왕국의 사람들, 고대 문명을 침공한 서양 사람들,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프로퍼간다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감수성으로 다른 대상을 대할 수 있을까? 다른 대상이 드러내는 아픔에 우리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아직 읽지 못한 김승섭 교수의 책을 읽어야 하나 싶다.

다른 사람의 '굳건한 말, 자신있는 선언'에 끌리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인간은 유한하고 나약하고 자기 불만에 가득하여 나를 나 대신 확신해주고 확언을 주는 사람에 끌린다. 끌려 가고 싶은 묘한 기분, 내가 해야 할 선택을 다른 대상에게 미루고 싶은 마음, 그럼으로써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늘상 우리 마음 속에 있다. 당장의 편안함, 혹은 덜 불안함을 위해서는 그게 전략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나 대신에 죽을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나 대신에 살아갈 수도 없다.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 드는 건 다른 인간의 선전.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세가지 무능력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중 사유에 있어서의 무능력은 어떠한가?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사유할 시간조차 없지 않은가. 사유할 시간 조차 없는 사람에게 사유하는 능력이 자라날리 만무하다. 산책이든 명상이든 자신의 생각의 소리를 들어볼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결국 휴대폰은 멀리하고, 자기에게 귀기울이는 시간을 마련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게 사유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