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 그랑프리에 나올 선수들의 소개와 그들의 경기는 여러번 보았지만, 내 눈을 잡아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론 잘하기는 한다.
오늘 출전한 폴 슬로윈스키, 구칸 사키, 짐머멘 모두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이 뿜어주는 포스는 아직~. 폴 슬로윈스키의 경기가 그 셋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자, 내가 관심있게 본 경기들에 대해서 부터 이야기하자. 순서는 경기일정대로..
내가 기다린 첫번째 경기는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경기였다. 나는 이 선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첫째,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다. 그가 구사하는 브라질리안 하이킥이나 깔끔한 로우킥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아니, 일단 나를 즐겁게 한다. 둘째, 다른 노련한 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맞다가 쓰러질 지언정, 아픈 티를 팍팍 내거나 하지 않는다. 아파도 표정이나 자세를 관리해야 한다.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다. 셋째, 침착한 눈빛. 이건 첫번째, 두번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페이토자를 보고 있으면, 멋있는 선수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페이토자는 요즘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그는 다운을 당했다. 물론 후반에서는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며, 에롤 짐머멘을 압박했고, 다운 직전까지 갔지만, 이미 시간을 다 써버리고난 후였다. 예리한 카운터 펀지를 날리고 나서, 또는 멋진 브라잘리안 하이킥을 적중 시키고 나서, KO를 확신하는 그만의 멋진 세리모니는 볼 수가 없었다.
두번째 경기는 당연히 최홍만과 바다하리의 경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새로운 1인자로 떠오르고 있는 무서운 '바다하리'. 훨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깔끔한 매너와 기량까지 어디하나 빠지는 게 없다. 오른쪽으로 킥을 날리고, 발이 닿자마자 왼쪽으로 킥을 날리는 민첩함은 190을 넘기는 키에, 100kg약간 넘는 사람의 움직임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도 '(그가 말하길) 길거리에서 싸워서 이겨본 덩치큰 사람들과 비슷한, 그렇게 덩치만 크고, 기술은 없는 최홍만'에게 다운을 하나 빼앗긴다. 물론 그 다운을 빼앗는 모습이 최홍만의 적극적 공격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다운은 다운이며, 이 다운으로 인해, 2,3라운드에서 바다하리의 공격은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최홍만은 그냥 큰 것이 아니다. 몸이 큰 것은 최홍만의 재능 중에 하나다. 지금은 티비에서 볼 수 없는 아케보노도 무척 컸고, 이미 K-1에 데뷔한 김영현 선수도 무척 크다. 하지만, 사이즈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최홍만은 '큰 몸'이라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시작하고 있고, 일단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바다하리의 기습적 '라이트 공격'에 당하지 않기 위해 안면쪽으로는 가드를 열심히 지켰고, 바다하리가 끊임없이 오른쪽, 왼쪽 바디를 공격했음에도 쉽게 쓰러지지도 않고, 가드도 계속 지키려고 노력했다. 분명 바다하리의 바디 펀치는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연장전이 시작되기전 타월을 던진 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오늘 최홍만의 경기내용은 좋지 못했다. 다운도 엉겁결에 빼앗아 내지 못했다면, 분명 더 많은 사람이 실망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세번째 경기. 가장 재미있었던 피터아츠와 셰미슐츠의 경기. 전설의 노장의 엄청난 투지를 볼 수 있었다. 팔길이, 다리길이, 나이만 놓고 봐도, 시종일관 적의 품 속으로 뛰어드는 피터아츠의 모습은 '투지' 그대로인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며, 주먹을 내고, 상대의 공격에 당하지만 않고, 뒷걸음질 치지 않는 피터아츠의 모습은 화려한 기술보다도 훨씬 멋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셰미슐츠의 패배를 예상했을까? 하이킥도 예전같지 않고, 펀치의 임팩트도 예전같지 않는 피터아츠. 하지만, 그의 투지와 승부 근성과 게임을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 내는 능력은 대단했다. 그의 투지와 화이팅에 관중들은 몰입하게 되고, 예전의 전설을 다시 보는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져들었다. 경기 후, 링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체크무늬 민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피터아츠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일본 K-1의 상징과도 같은 무사시는 이제 '상징' 그 이상의 의미가 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의 기합소리가 작아진 만큼, 그의 펀치와 킥도 무뎌진 것 같았다.
팬들 덕분에 16강에 초대받게 된, 레이세포. 펀치가 어떻고, 킥이 어떻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의 스테미너를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펀치를 맞고도 히죽히죽 웃는 모습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점점 그 웃는 모습은 허세로 보인다.
가장 걱정되는 선수는 박용수선수. 물론 16강 경기는 아니고, 1년전 결렬된 랜디김 선수와의 경기였다. 우리나라의 국기 태권도를 기본으로 하는 박용수 선수. 아직도 태권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태권도에서는 킥을 차고 나서, 카운터가 날라온다면, 상대편의 카운터도 킥일 것이다. 하지만, 입식타격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로우킥을 차는 방식이 조금은 더 입식타격에 맞는 모습을 바뀐 듯 했지만, 경기초반에 잠깐, 매 라운드 초반에 잠깐 얼굴 앞을 지키다가 가슴께로 내려가는 팔. 가장 기본되는 자세를 제대로 몸에 다시 익히지 않는다면, 안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일을 열어번 겪게 될 것이다. 아니면 여러번 똑같은 일을 겪기도 전에 K-1링에 오르지 못할지도.. 가장 걱정이 되는 선수다. 그에 반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연습을 많이 했다는 랜디김 선수는 나이도 많아보이고, 날렵하지도 않았지만, 경기때마다 점점 더 센스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