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하고도 열흘을 넘긴 우리 아들은 이제 제법 손의 움직임이 세밀해 졌습니다. 서로 멀기만 했던 오른손과 왼손은 우리 아들 가슴 위에서 만나, 아들 입으로 향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할퀴기만 하던 손들은 이제 제법 천천히 아들의 입을 찾아 갑니다. 엄마 젖을 먹고도 뭐가 그리 좋은 지, 손가락을 빠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구강기'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아들이 변한만큼 제 일상의 패턴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들이 먹고, 자고를 반복할 때는, 아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아침 일찍일어나서(지금도 새벽에는 저를 깨우지 않았던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아침도 차리고, 퇴근해서는 저녁도 차리고, 집안 청소도, 설겆이도 했습니다. 아기 목욕은 같이 시키구요. 그리고 냉장고도 점검하고, 아침에 먹을 밥도 해놓고 자고는 했습니다.
헌데, 이제 아들이 크고(지금은 8킬로그램이 넘습니다.), 놀기 시작하면서, 누워있기를 싫어하면서, 아내는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어졌고, 저는 해야할 일이 또 생긴 겁니다. 제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만큼, 아내도 제가 퇴근하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퇴근하자마자 아이에게 달려가 인사하고, 손발을 씻으러 갑니다. 이제 아이와 앉아서 짧게 주어진 아이와의 놀이시간을 갖습니다. 노래도 불러주고, 손뼉치며 놀기도 하고, 책도 가끔 읽어줍니다. '책을 읽어주는 행위'가 힘든 것은 아닌데, '저에게는' 재미없는 책을 읽어주자니 좀 어색하긴 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놀아주다가 6시가 되기 전에 아이를 씻깁니다. 수면교육, 혹은 수면훈련의 한 방편으로 아이를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씻기고, 어떤 루틴을 만들려고 합니다. 씻기 전에는 먼저 구강청결티슈로 아이 이를 닦아 줍니다. 이제는 정말 씹는 힘이 좋아져서, 제가 집게손가락으로 잇몸이랑 혀, 입천장을 닦아주려면 엄청 씹어댑니다. 손가락이 약간 얼얼할 정도로요. 그렇게 힘있게 씹는 걸 보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거 너무 씹다가 아이 턱이나 잇몸에 안 좋은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 이를 닦고 나면, 물을 받고 아이들 데리고 욕실로 갑니다. 좁은 욕실에 커다란 아기용 욕조를 놓고, 아이를 씻깁니다. 한 2주전부터 아이를 혼자 씻기는 데, 이것도 한 20여분의 시간이라도 아내가 혼자서 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게 하려고 한 거죠. 그렇게 씻기고, 행구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닦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뽀얀 얼굴은 정말 이쁜 호빵 같습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제 얼굴이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이는 참 바를 게 많습니다. 먼저 잘 닦여야 합니다. 목이나 겨드랑이 사타구니, 살이 겹치는 모든 부위를 잘 닦아 줘야 합니다. 땀띠가 생기거나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를 잘 닦이면서 이런저런 소리도 내고, 노래도 부르며 지겹지 않게 해줍니다. 그리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상체부터 오일을 발라줍니다. 그리고는 로션도 발라줍니다.
그런 다음에는 하체에 오일을 발라줍니다. 입으로 바람도 후후 불어가며 아이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아이는 또 꺄르르 웃어줍니다. 다리에도 로션을 발라주고, 이제 아이 몸을 뒤집어 놓습니다. 아이는 거북선처럼 목을 꼿꼿이 세웁니다. 그덕에 목아래에 땀띠를 막을 분도 쉽게 바릅니다. 등에도 오일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살이 접히는 부분에는 땀띠 안나라고 분을 발라줍니다. 이제 끝.
아이를 바로 눕히고, 팬티(기저귀)입히고, 옷도 입힙니다. : )
이러고 나면, 이쁘네 이쁘네라는 말이 계속 제 입에서 흘러나오죠.
이제 엄마젖 먹을 시간입니다. 밤중 수유를 끊어가려고 하는 데, 아직은 새벽에 일어나서 칭얼거리면 젓을 먹입니다. 100일을 넘기고 나서는 새벽에는 한 번 정도 밖에 깨지 않는 걸 보면, 우리 아들 정말 효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무럭무럭 자라겠죠?
젖먹다 잠시 잠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곧 깨죠, 그러면 안아주고, 아기띠해주기도 하고 재우려고 합니다. 저는 아기띠하고 영어신문을 읽어줍니다. 꼭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보다는, 제가 그 시간에 융리하게 소리내어 영어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라서요. 아이에게 영어신문을 읽어주다가 눈을 맞추면, 또 아들은 웃어줍니다. : )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사의 퇴직에 대한 내용이었으니, 내용이 재미있어서 웃는 건 아니겠죠? 아빠를 보며, 웃어주니 고마울 따릅니다.
써놓고 나니, 꽤 긴 과정이네요.
아이가 잠들면, 부부가 쉴 시간입니다. 아내는 아이를 낮동안 안아주느라, 아이와 놀아주느라 녹초가 되었고, 그냥 수박이나 먹으면서 드라마나 보면서 쉽니다. 몸의 피로를 풀려면, 일찍 자야할텐데, 잠자지 않고 쉬는 시간이 소중한 아내는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다음 날이 되고, 아침이 밝아오면, 아내는 제 아침을 차려줍니다. 늘 12시를 넘겨서야 잠드는 저는 간신히 출근시간에 맞춰갈 수 있을만한 시간에 일어나거든요. 아침도 제가 차려야 하는 데.. 흠흠. 좀 더 일찍 잠들어야 하는 데, 저에게도 쉬는 시간은 중요하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사실 '몸이 힘들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재미난 표정을 짓고,
아이가 잘 자는 표정을 보려고, 안아주고 안아줍니다.
아들도 그걸 느끼겠죠?
오늘도 아내를, 아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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