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 산책길.
청설모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하던 일이 바빠서일까. 나를 피하지 않으니 그냥 거기에 서서 청설모를 좀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간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나뭇잎도 몇 개 떨어진다. 그리고 청설모는 나선을 그리며 내려온다. 그리고 입에 물고 온 무엇인가(당연히 도토리이지 않겠는가?)를 나무 아래 찔러 넣고는 두 앞발로 주섬주섬 나뭇잎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 나무를 오른다. 한 군데에 계속 숨기나 싶어서 더 지켜봤다.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다른 곳에 도토리를 심어 넣는다. 그는 겨울에 먹을 양식을 숨기는 것인가? 도토리 싹을 심는 것인가? 아들과 읽었던 책 내용을 떠올려 보니 청설모나 다람쥐는 도토리를 숨겨둔 곳을 잊기도 한단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수십 개를 수십 군데 숨겨 놓을 테니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청설모는 채집꾼이라기 보다는 농사꾼에 가까운 건 아닐까? 과실을 누린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저렇게 부지런한 청설모를 보자니,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느리게만 생각되더라.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사이에 나무에 오르고, 또 다른 나뭇잎이 하나 떨어지는 사이에 나무에서 내려와 도토리를 숨기는 청설모. 저 청설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생존일 것이고, 그 생존의 활동은 참나무의 생존을 보장한다. 이런 공생이 가능한 데, 그 조정은 누가 한 것일까? 각 개체의 생존이 지향하는 목적이란 게 있을까? 지구의 존속일까? 지구의 존속은 또 어떠한 목적을 위한 것일까? 애초 생존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생존인 게 아닐까. 도토리 하나를 흙에 심고 물을 주면 싹이 난다는 데. 숲에 있는 도토리는 안되니 학교 안에 있는 참나무의 도토리를 하나 가지고 가서 심어봐야 할까 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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