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성적이 정리되는 대로, 생활기록부를 마감해야 한다. 담임이라면 훨씬 바쁘다. 매달 하던 것처럼 학생들의 출결을 정리해야 하고, 봉사활동도 모두 챙겨봐야 한다. 생기부에 모든 시간표가 채워져야 하고 창체활동 같은 경우도 오류 없이 입력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올해 담임이 아닌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맛보고 있는데, 평소 수업 연구를 같이 하던 선생님들과 융합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첫 수업이었다.
평소 수업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고 온라인 수업 나눔, 오프라인 수업 나눔 활동을 해온 선생님들이 있다. 과학 1, 수학 1, 국어 1, 영어 2. 이 선생님들 덕분에 올해 진주여자고등학교 생활이 즐거웠고 보람도 컸다. 배운 점도 많고 재미도 있었다. 학기 말이 되면 나는 으레 그런 것처럼 좀 힘이 빠지고, 동면.. 아니 생기부 기록 모드로 들어간다. 다음 학년도를 준비해야 하니 교육과 관련해서 특히 책을 많이 읽어두는 시기다. 나는 융합수업 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하게 되었다. 이번 주 목요일과 다음 주 월요일 두 차례의 수업이 더 남았다. 그 과정은 공개하지 않는 곳에 작성해두었다. 오늘 첫 수업을 하고 나니 느낀 바를 써둬야 할 것 같다.
융합수업 준비의 의의 : 수업을 준비하면서 배운 점
- 무엇을 결정하든 시간이 더 걸린다.
- 혼자 하는 수업이라면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미 정해져 있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자 하는 수업의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단점이기도 하다. 나의 수업에서의 '변화'요소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 힘들다.
- 활동은 어떻게 할지, 어떤 소재로 수업할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모두 함께 결정해야 한다. 그러니 회의가 잦다. 오늘 첫 수업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네 번 정도 회의를 했다. 결정할 게 많고 서로 이해하고 있는 게 다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보람되기도 했다.
- 모든 준비를 나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
- 혼자 하는 수업에 대한 결정이 모두 내 몫인 만큼 그 책임도 내게 있다. 준비도 모두 나 혼자 해야 한다. 하지만, 융합수업을 준비하면서는 분업이 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잠시 딴 데 정신을 팔고 있어도 나보다 앞서 일을 해내는 분의 덕을 본다. 덕분에 나도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 내가 맡은 수업 영역에 있어서는 내가 준비하지만, 수업 전체를 위한 준비는 나누어할 수 있다. 이때 팀워크는 힘이 된다.
- 전체 수업이 어떤 모습이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 내가 맡은 세션이 어떻게 진행 될 지는 쉽게 시뮬레이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로 들은 다른 선생님의 수업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수업이 시작되고 내가 관찰자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때서야, "아, 선생님이 말한 수업이 저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하고 알게 된다.
- 전체 모습을 예측하기 힘든 만큼 수업은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산만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수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처럼 극본이 짜여진대로 우리가 수업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 학생들은 '융합수업'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 우리는 2명이 1팀으로 12명을 뽑았다. 20명이 넘는 학생이 신청했다. 시험이 모두 끝난 학기말에, 수업을 마치고 기다렸다가(융합수업은 방과 후에 진행했다. 4시 20분부터 2시간), 저녁도 먹지 못하고 2시간가량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과중한 수업 활동에 참여 신청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간단히 수업을 듣고 싶은 이유를 써보라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수업을 기다려왔다' 등의 의견이 있어서 그런 의견을 쓴 학생들을 보고 싶어 졌다.
- 융합수업이라는 용어를 들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천하는 분을 근처에서 본 적이 없다. 일단 나부터도 그런 시도를 해보지 못했으니.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학생들도 새로운 도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로 호응하면 더 새롭고 즐거운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수업의 주제 :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우선 소재는 과학적 요소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탄소발자국으로 정했다. 학교나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도 학습 요소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저렇게 정했다. 수업 자료를 각자 원하는 것으로 했다. 일단 기반은 '탄소발자국'이지만, 그 접근은 다양했다.
- 과학선생님 : 탄소발자국에 대한 일반적 사실
- 국어 선생님 : 환경오염과 관련된 노래, 시 작품
- 나(영어) : 소득 수준에 따라 공기오염에 대한 노출도가 다르다는 데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
- 영어 선생님 : 탄소발자국 줄이기 위한 실천 방법을 담은 뉴욕타임스 기사
진행 : 한 세션당 15분
우선 대표 선생님이 3차례에 걸친 수업 진행에 대해 안내하고, '주제중심융합수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안내했다. 그리고, 탄소발자국이란 소재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이후로는 교실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지식시장'과 유사한 형태로 교사가 전문가가 되어 설명을 진행하고, 학생들은 순서대로 세션을 돌아가는 식으로 진행했다.
아래 사진처럼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A그룹 학생은 '과학선생님'의 세션부터 시작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칠판 앞에 설치된 빔프로젝터에 커다란 타이머를 띄우고 15분이 지나면 벨이 울리도록 했다. 그러면 A그룹 학생들은 국어 선생님 구역으로 이동. 또 15분이 지나면 영어 선생님 세션으로 이동했다.
15분이란 시간은 딱 적당했다. 과학선생님은 과학적 기초 사실을 많이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에 15분 내내 쉴 새 없이 설명을 할 만큼 바쁘기는 했다. 그래도 4개의 세션을 모두 돌면 1시간 정도가 진행되니, 학생들의 집중력이나 체력을 생각해서도 딱 적절한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15분은 좀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각 교사가 전달하고 싶은 바, 강조하고 싶은 바를 전하기에는 부족하지는 않았던 시간이었다.
남은 2차례의 수업
남은 두 차례의 수업은, 학생들이 교실 안팎에서 탄소발자국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마지막 3차시에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줄 최종 결과물을 만든다. 최종 결과물은 형태에 제약이 없다. 노래, 랩 같은 퍼포먼스도 가능. 물건으로 작품을 만들어도 되고, 동영상으로 어떤 주제를 전달해도 된다. 학생들이나 학교에 호소문이나 제안서를 써도 된다. 이런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학생들이 최종 결과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교사가 도와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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