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준비로 왁자할 시간이다 이제. 학생들은 그 동안 갈고 닦은 혹은 축제를 위해 급하지만 열심히 갈고 닦는(?) 재주를 뽐내기 위해 연습이 한창이어야 할 시점이다. 작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올해에는 뭐라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요 몇주 코로나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아직은 긴급한 거리두기 대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는 축제를 준비 하고는 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되고 나서 걱정이 안되는 상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학습도 한번 다녀왔고, 확진자, 밀접접촉자 등등 여러 사례가 있었지만, 어떤 사태든 심하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일단 귀신의 집
축제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위드코로나 분위기 때문에 학교 안팎으로 여러가지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분위기에 적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우왕좌왕 하기도 했다. 우리학교 학생회에서는 일단 학급부스 신청을 받았는데, 축제 진행 과정은 학생회에서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담임인 나도 모르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무튼 학급 학생들은 귀신의 집을 테마로 교실을 꾸미기로 일단 정했다.
나는 보드게임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지만, 별로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귀신의 집도 아주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게 아니라 나는 걱정이 되었다. 어떤 일이든 많은 학급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일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반장만, 부반장만 힘들어 지기도 한다. 일은 진행되지 않는데, 마음만 상하게 될 수도 있다. 여러 차례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위해 학급 회의를 했지만, 이렇다할 결론에 닿지 못했다.
반장의 힘
지난 주말에는 필요한 물품을 주문했어야 이번주에 작업을 좀 할 수 있었을텐데 늦어져 버렸다. 월요일에야 필요한 물품을 정하고, 나는 결재를 올리고, 그리고 나서야 주문을 넣을 수 있었고, 온라인 샵에 주문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되었다. 오늘배송 옵션으로 검색을 해서 주문했지만, 너무 주문 시간이 늦어져 버렸다. 이제는 기다린다.
어쨌든 월요일에 주문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반장 덕분이다. 반장은 주말 동안 교실 안을 어떻게, 무엇으로 꾸밀지, 누가 어떤 역할을 할 지 대강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왔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필요한 지가 그 다음. 주문이 늦기는 했어도 포기는 없다. 이번주 축제일이 다가오자 반장 눈에서 빛이 반짝인다. 학급회의 시간을 잡아서 각 친구들에게 역할을 준다. 누구는 귀신, 누구는 입구, 누구는 출구 등등. 우리가 주문한 품목은 다음과 같다.
- 멀칭비닐
- 위험 접근금지 테이프
- 흰색 천
- 하얀 소복
- 하얀 마스크
- 빨간색 수성 락카
- 신문지 10kg
- 페이스페인팅용 물감
박스도 필요하고, 테이프도 필요하고, 자잘하게 더 필요한 게 많은데, 반장이 모두 챙기려니 힘들다. 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약간씩만 도와준다. 그런데, 멀칭비닐(밭에 씌우는 얇은 비닐. 0.02120cm200m 가 1.7만원)을 천장부터 내려서 이어 붙여서 교실 안에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멀칭비닐은 수요일 도착이다. 어쩔 수 없이 영농자제점을 찾아서 반장을 태우고 직접 사러 갔다.
도와주겠다는 학생들
목요일인 16일이 축제날이고, 내일인 수요일은 15일. 택배는 오후에 도착할테니, 내일 하루 동안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혹시나 저녁에 일을 해야 하면 남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니 11명이 손을 든다. 23명 우리 반에서 절반이 남겠다는 것. 몇 명은 이걸 핑계로 학원을 빼먹을 수 있다면 좋아하는데, 어쨌든 남아서 당연히 돕겠다는 마음이 고맙다. '저녁은 선생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라는데,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지도교사가 없는데, 학생들끼리 남아있을 수 없으니, 나는 내일도 남아야 하는 것일까?
내일은 어떤 모습일 지 모르겠지만, 오늘 신문지가 도착했고, 몇 명은 신문지로 창문을 가리는 작업까지는 했다. 내일 해야 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면 그것으로 다행. 학급 부스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배우게 될 지 아무도 모르지만, 무엇인가 배우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안다.
학급이라는 집단의 케미
학급의 구성원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특히나 성적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1학년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게다가 우리 학생들은 3, 4월 달에는 서로 많이 보지도 못했다. 얼굴 익히며 서로 익숙해지는 시간이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반 학생들은 서로를 위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편이다. 이건 담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라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담임의 역할이나 영향이 얼마만큼인지 알기 어렵다. 분명한 건, 학급의 분위기에 담임의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담임만의 영향으로 학급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 학급에 모인 게 우연이라면, 좋은 학급으로 한 해를 보내는 건 기적이다. 아직도 서로 충분히 알지 못하는 서로지만, 그럴 때는 서로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도와줄 일을 도와주면 된다. 나라는 담임이 좋은 촉매제가 되면 좋겠지만, 그건 나의 바램이고 욕심이다. 그저 기도하는 마음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기도하는 건, 내일 택배가 좀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것.
저녁은 뭘 시켜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