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피곤함이 심했다. 잠을 늦게 자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원인은 단 하나뿐이다. 딸이랑 같이 자는 데, 딸이 아직도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싼다. 새벽에 나는 여러 번 깨서 딸의 상태를 살핀다. 이불이 젖어 있으면 바로 일어나 이불을 바꾸고 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힌다. 딸이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나는 몇 번이나 일어난다. 그게 쌓여서 그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먼북소리 독서모임 하는 날. 역시나 몸이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다. 그래도 독서모임은 건너뛸 수도 없고 빠질 수도 없다.
이제 줌으로 하는 독서모임도 제법 익숙해졌고, 익숙해져서 걱정이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 이유는 '책' 이야기만 하려고 독서모임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내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한다. 악수하고 앉아서 같이 간식을 나눠 먹으며, 우리 또 한 달은 잘 지냈다고 서로 다독여 준다. 온라인 독서를 하면, 차를 타고 이동할 필요도 없고, 코로나 감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온라인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간신히 '최후'의 방법이 될 뿐이다.
오늘의 책 : 위건부두로 가는 길(조지 오웰)
11월 책이 '임계장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조지오웰은 우리에게 '1984'나 '동물농장'으로 훨씬 잘 알려져 있다. 본명인 '에릭 아서 블레어'보다 '조지 오웰'이 훨씬 유명하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초반에 막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삶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들어갈 기세로 지하로 들어가 거기서 또 좁은 통로를 가야 '일할 곳'에 도착하게 된다. 암흑 속에서 작은 등에 기대어 작업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뒤틀릴 것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끼니를 때운다. 시커멓게 절은 채로 지상으로 올라와도 삶은 녹녹지 않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막장으로 가는 그 묘사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조지 오웰의 문장은 그다지 길지도 않지만, 길다고 해도 사진을 내 눈에 박아 넣듯 시리고 선명하다.
상류 중산층 중에서도 하류에 해당하는 '출신'을 가진 노동계급의 삶에 빠져들기를 결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진정한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영원히 노동자를 관찰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훌륭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해냈다. 조지 오웰이 존경을 받는 포인트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문장이 좋았다. 우리는 우리 세계가 마치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 때 '우리가 먹는 쌀을 키워주시는 농부 아저씨..'에 대해서 배우지만, 자라면서 그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나 서로의 인생에 얽히고 설켜서 서로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데, 마치 동떨어진 존재처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다시 읽으며 문장을 음미해야 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조지 오웰이 말하는 문장을 쓰는 방식이 예가 이 글에 모두 나타나 있다. 읽고 이해할 책으로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지침서로도 너무 좋다. 오늘은 정말 피곤하니 이만.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 영어 독해를 위한 책읽기(1) '종의 기원을 읽다' (3) | 2024.05.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