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수동 그라인더로 간다. 집에는 전동 그라인더가 있지만, 학교에서는 수동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집에서는 아이들 틈에서 ‘간신히’ 커피를 한 잔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빠르게’ 커피를 내리는 게 중요하다.
커피를 차르르 붓고, 그러다 약간 흘리고, 줍고 다시 넣고, 그라인더를 다리 사이에 끼고 잡고 돌린다, 오른손으로 레버를. 맷돌에 들어가는 콩처럼, 커피콩은 그라인더 속으로 들어가 가루가 된다. 드립퍼에 필터를 접어 넣고 커피를 툴툴 붓는다. 정전기 때문에 커피 가루는 그냥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조금 날리기도 한다. 지저분해진 테이블을 소독용 물티슈로 닦는다.
끓인 물을 드립포트에 붓고 커피를 적신다. 조금 부풀어 오른다. 신선한 커피이고, 적당한 크기로 커피콩이 갈렸다. 쪼르르 가운데에서부터 손을 돌려가며 물을 붓는다. 되도록 일정한 물줄기로, 커피에 사뿐히 가닿게 물을 붓는다. 보통 세 번 정도에 끝내야 하지만 내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이 많다. 3, 4인용 드립퍼로는 부족해서 물을 더 붓는다. 맛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하다.
코로나 2단계 '덕분에' 와 '때문에' 근무 환경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커피를 내리는 잠시 동안 사람들과 같이 앉아 있는데, 이제 그러지를 못한다. 잠시 내려앉아 마시는 시간이 귀한데 이제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드립백을 샀다. 하나만 뜯어 내 컵에 얹고 내 몫의 물만 부으면 된다. 커피 맛은 좋은데, 커피 맛이 별로다. 커피 한 잔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의 앉은자리까지 필요한다. 맛있는 커피는 커피를 정말 즐기는 데에는 필요조건이다. 사람이 있어야 ‘커피 즐기기’가 완성된다. 그러고 보면, 예전 사람들이 왜 다도를 만들었는지가 이해가 된다. 되도록 지켜야 할 차례, 의식을 만들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예상하고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이을 모두 예상한다는 건 참 마음 편하고 느긋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으로 맛보게 되는 차의 맛은 달디달지 않을까.
텀블러에 담아든 커피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이렇게 텀블러에 담아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매 쉬는 시간 도시락에서 밥 한 숟가락, 반 찬 하나 빼먹듯 사람이 출출할 때 조금씩 맛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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