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가보지도 않은 구간을 자전거로 탈 계획은 아니었다. 가방에는 아이패드, 오늘 입었던 옷이 들어 있었다. 늘 그런 것처럼 브롬톤 앞에 달린 C백은 무겁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방 속에 언제라도 먹으려고 챙겨둔 간식이 있어서 시도해볼 수 있었다.
급식으로 밥버거가 나왔다. 1개가 정량인 것 같았지만, 나는 2개를 먹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소모되는 열량보다 더 많은 양을 더 자주 먹게 된다. 자전거는 살 빼는 운동이 아니라 튼튼해지는 운동.
대평FM코스는 물박물관 쯤에서 시작해서 진양호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는 구간이다. 사실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 지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다. 스트라바 맵에 표시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물통에 시원한 물을 가득 채우고 일단 물박물관까지 가보기로 한다. 얼마전부터 왼쪽 무릎이 썩 좋지 않아서 교통공원에서 물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업힐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냥 돌아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별 문제가 없다.
습지원 자전거길
잠시 휴식
콜라 한 캔, 콜라 작은 병 하나, 에너지바 2개, 허니머스타드 넛츠, 천하장사 소시지 2개, 딸이 준 비타민, 물 1.5리터.
대평 한 바퀴를 돌고 초전까지 오는 데 내가 먹어야 했던 양이 저만큼이다. 더워서 땀을 흘려서 그런지 물이 자꾸 들어갔다. 아무튼 시작은 콜라 한 캔과 에너지바 하나로 시작했다. 그리고 스트라바 앱을 보면서 페달을 저었다. 스트라바는 네비게이션 기능이 없고, 대평fm구간 gpx 파일도 구해두지 않아서 좀 더 찾아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갔다.
잠시 차도를 가다가 대평이라는 표지를 보면서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길을 몰라도 돌 수 있다. 물론 대평을 향해 가다가 진양호를 돌게 되면 진양호 표지를 보고 따라가면 된다. 아,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gpx 파일로 안내를 받으면서 가거나, 길 아는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차도라 불안함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어제 그래도 후미등 충전을 잘 해두어 오늘 요긴하게 썼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도 잘 보라고 앞쪽에 달아둔 등도 켜고 다녔다.
와, 진양호가 이렇게 넓었구나. 내가 본 진양호는 진양호 전망대에서 본 것, 물박물관에서 본 것이 다 였다. 하지만, 그게 다 가 아니었다. 더 많은 모습을
더 이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진주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결국 대평구간에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무 그늘이 자주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거의 계속해서 진양호를 볼 수 있었다.
업힐 이라고 할 만 한 것들이 두 개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못 견디게 힘든 구간은 전혀 없었다. 나는 브롬톤에 짐을 잔뜩 싣고도 갔으니,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구간임이 분명하다. 짧은 거리라 로드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보급’ 시간은 필요없이 않을까 싶기도 했다. 코스 중 자주 정자가 보이고, 버스정류장도 있어서 앉아서 쉴만한 공간은 있다. 그래도 중간에 먹을 것을 살만한 곳은 없다.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타거나 속도가 나처럼 느리다면 간식을 충분히 준비해 가자.
목이 너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기 전에 간식을 먹었다. 요즘 페달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그런지, 페달링은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 때문에 다리가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기어를 낮추고 다시 정비할 시간이 있었다. 페달링은 힘들지 않았고, 손목 통증도 없었는데, 목과 어깨는 불편했다. 자주 고개를 숙여서 목 뒤를 스트레칭 해줬지만, 힘든 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리를 저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 더 가벼운 자전거가 필요해.
- 아들이랑 같이 오려면, 어디서 시작하는 게 좋을까.
- 진주 안에 자전거 인증 도장을 만들면 어떨까. 가족끼리 같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해서.
- 헬멧이 무겁다.
- 고프로를 가지고 와서 촬영을 했었어야 했는데.
- 다 타고 나면 꼭 콜라를 마셔야지.
- 내일은 자출하지 말까.
끝이 보이는 지점
네비게이션이 안되니, 얼마나 남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앞으로 있을 코스만 보며 탄다. 덕분에 피로가 덜 했던 것 같다. 늘 처음 가는 길은 더 오래 걸리고 더 피곤하다. 그건 차로 가도, 비행기로 가도 마찬가지다. 그 피로감은 좀 기분 나쁘다. 내가 배낭여행 따위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초행길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기서 느끼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같은 초행길이라도 그걸 설레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겠고, 그 사람들은 늘 나가고 싶어 하겠지. 내가 꺼리는 게 있으면 거기에 익숙해지는 게 어렵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그래도 나일테니, 나를 길들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오늘은 그 방법이 주요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 앞으로 남은 업힐은 언제 다가올까.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과 수고에만 천착하면, 답은 하나다. 어쨌든 빨리, 수고를 덜 들이고 가려고 요령 피우게 된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의 다 왔어요’ 라는 데, 그게 참 적절한 응원이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나요?’ 라고 묻는 사람은 이미 충분히 걸어올라간 사람들 아닌가. 산에 들어서자 마자, ‘정상이 얼마인가요?’ 묻는 사람은 없고, 아마 그렇게 물으면 하산 하는 사람은 그저 어안이 벙벙해하지 않을까. 그저 앞에 있는 돌 하나,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가는 게 제일 좋다.
거의 다 왔을 때는 안장통이 심해졌다. 자주 쉬기는 했는데, 그래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퇴근하면서 자주 다니는 구간에 들어오니 안장통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안장통의 경우, 안장의 높이나 안장코의 높이, 혹은 자세에 영향을 받는다는데, 어떤 부분 때문이었을까. 내 몸과 자전거를 맞춰 가는 일은 쉽게 끝이 나는 일이 아니구나.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 결국 혼자 말을 걸고 혼자 생각한다. 늘 혼자 있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혼자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전거가 좋다. 한 두 대 더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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