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우치다 다츠루 외)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아주 익숙하다.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도 그렇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여러번 여성을 애낳는 기계에 비교하여 공분을 사기도 했다. 뉴스를 소비하면서, 정부가 말하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인구가 감소하면 위험하다.라고 믿게 되었는 지 모르겠다. 인구 감소에 대해 내가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우치다 다츠루
이 책을 고른 첫번째 이유는 저자 때문이다. 우치다 다츠루는 일본의 현대 사상가이자, 교육자이자 문화비평가이다. 그가 쓴 책을 천천히 꾸준히 읽어가고 있는데, 쉬운 말로 애매한 것들을 설명해 낸다. 게다가 겸손하다기 보다는 소탈해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일본을 맹렬하게 비판할 때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은 우치다 다츠루 선생이 쓰지 않았다. 서문만 쓰고, 다른 여러 일본 사람들이 글을 썼다. 인구가 감소하는 사회라는 소재는 같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치다 다츠루라는 저자만 보고 이 책을 샀다면 잘못산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마감을 정하고 읽어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인구감소 사회에 대해 내가 들은 것들을 믿었던 것에 대해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 지 안내해준다. 고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공유하는 생각
각자의 시선에서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저자들이 공유하는 생각이 있다. 인구감소는 필연적이다. 인구의 감소를 문제로 받아들이면, 답은 인구의 증가 내지는 현상 유지가 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를 정한다. 인구감소는 필연적이라고 보면, 인구가 감소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로 초점을 옮길 수 있다. 성장 지향 사회는 위험하다도 저자들의 공통분모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기반으로 한다. 상품을 더 만들고, 더 팔아야 한다. 시장이 더 커져야 하고, 시장이 커진다는 말은 똑같은 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거나,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달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급격한 시장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펼치더라도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다양한 단어들
저자들은 다양한 개념으로 인구 감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다양한 단어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 머리가 꽉 차는 것 같은 포만감을 느껴 즐겁다.
- 환경수용능력carrying capacity
- 던바의 수
- 두뇌자본주의
- 범용인공지능
- 순수 로봇 경제, 순수 기계화 경제
-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 Anywheres Vs. Somewheres
- 문화를 통한 사회포섭Social Inclusion
생각을 자극하는 생각
우치다 다쓰루는 서문에서 일본인이라는 리스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일본은 이미 여러차례 ‘최악의 경우를 염두하거나 준비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위험을 초래한 적이 있다고 말하고, 일본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패배주의로 이어져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가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치 최악의 사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기고, 파국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는 2차세계대전과 일본동부 지진 이후의 사태를 예로 드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는 달라서 우치다 선생님의 지적이 아주 신선했다.
세계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라 문자의 지배만 받게 된다. 문자에 의한 소통이 전쟁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대면의 상황에서도 언어가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력은 10퍼센트 미만이다. 문자로 의사소통한다면 얼마나 명확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환경수용력에 대한 영향으로 인간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류 총량을 조절한 것이다. 끔찍한 방법으로.
‘인구 감소에 맞춰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전략을 만들지 않은 그들을 비판해야 한다’라는 지적은 너무나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거의 모든 것을 맡겨버린 시대에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라는 상상은 가능이나 했을까.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은 ‘관계’다. ‘빚’을 진 상태는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청산될 때까지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위의 구절을 보고, 더치페이의 편리함이 관계의 가벼움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서로 빚지는 게 없고, 딱 받은만큼만 돌려준다면, 그것은 관계일까 거래일까.
사회라는 장소는 ‘세계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Anywheres’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어딘간에 정주해 살아가고 싶은 사람Somewheres’의 수가 더 많다.
정부의 긴축재정이 국가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저 문장이 나온다. 정부의 긴축은 사적 자본의 득세를 유도한다. 그러한 사태에 무너지는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
잘 읽었다
인구감소는 반드시 위험한 것이 아니고, 어쩌면 세계자본주의 시대에 필연적인 문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잘 살펴볼 필요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 개인의 관점에서 인구감소와 나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는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에 많은 개인들은 힘겨워 하고 있다. 인구감소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지만, 확실하고도 더 큰 충격을 개인들에게 줄 것이다. 내 삶의 변화를 예측하려면, 전지구적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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